▲ 김성민 기자
▲ 김성민 기자
복지시설을 나온 보호종료 아동은 임금 착취, 성범죄에 빈번하게 노출되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반면,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의 인권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철저히 보호받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교도관의 업무 환경이 열악해진 이유가 ‘재소자 인권’을 강조한 정책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정의로운 기능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심은 대법원 청사에 크게 쓰인 ‘자유·평등·정의’를 바라보며 증폭됐다. 보호아동보다 범죄자의 인권이 보장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우리나라가 풀어야 할 숙제다.
 
온갖 고통과 시험을 이겨온 ‘법사’라도 된 듯, “원래 그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 몰랐냐”라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위로도 지겹다. 아마도 금의 무게를 저울질하느라 바빠 존엄성이 상실된 채로 작동하는 게 분명하다.
 
선진국의 지표라 해도 무방한 복지국가의 궁극적 형태는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뜻이 담겼을 진데, 출생 후 기본적인 생리욕구를 보장받기 위한 자유로운 선택, 평등한 대우,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누리기엔 자격요건이 까다롭다. 맹장이 터져 병원을 찾은 한 보호아동은 보호자 동의를 받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다가 뒤늦게 복지시설에 연락해 겨우 도움을 받은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문제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보호아동들의 권리를 시설에서 보호자라는 명분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설을 조기 퇴소한 어느 보호종료 청년은 “지병이 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으로 쫓겨났지만, 자진 퇴소한 것으로 처리돼,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만 19세까지 복지시설에서 만기를 채워야 성인이 되어서도 만 24세까지 매달 정부로부터 자립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자진 퇴소한 보호아동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밖에 시설에서 발생하는 폭행, 성폭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스스로 도망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림잡아 1년에 6천명의 고아가 발생하면 3천명이 도망치거나, 사망한다는 비공식적인 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난 보호 아동만 해도 이와 같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반면,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은 스스로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볼펜을 삼키는 등 자해를 시도하는 일이 발생해도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수술이 가능하다. 이마저도 어떤 재소자는 “내가 동의도 하지 않았는데 강제로 수술받게 했다”며 교도관을 고소하기도 한다. 인권 보호라는 미명하에 교도관들은 폭행, 사망 위험에 처한 것이 현실이다.
 
인간을 혐오하기에 이를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을 접할 때면, 정의로움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나조차도 순수함을 허비하는 기분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인류애 박살’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차별받으며 살아온 한 취재원과 함께 한 자리에서 느낀 점은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사람들과의 차별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하면서도 씁쓸했다.
 
취재원은 소리 내어 웃으면서 “고아라고 손가락질하는 X들을 깠을 때 제일 속 시원했다”며 학창시절 이야기를 풀었다. 겉으로는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앉아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는 그에게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보육원에서 유년기 시절 겪은 물고문, 매질 등의 대한 내용은 보호아동들이 과연 보호받고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지옥같은 유년기를 보낸 보호종료 청년들이 찾아간 보호종료 지원 시설은 속칭 ‘앵벌이 소굴’이나 다름없었다는 신랄한 비판도 이어졌다. 교도소나 다름없는 통제 하에 노동 착취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이들 마음에 깊게 박힌 ‘외로움’을 이용해 정서적으로 지배하면서 이어지는 그루밍 성폭력도 허다하다.
 
그들의 피해 사실만 알리는 단발성 보도는 오히려 기대감만 키우고, 개선의 여지가 없는 현실을 맛본 이들에게 배신감만 안겨줄 뿐이다. 이제는 국회 입법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에 나서야 할 때다. 단순히 매월 자립지원금을 40만원으로 늘려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성폭행, 갑질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자립할 수 있는 교육이 먼저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도관의 안전을 포기하면서도 재소자의 교화 프로그램 진행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은 진정한 인권보호가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립지원대상 아동·청소년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발의자 명단에서 국민의힘 의원의 이름은 없었고, 당시 무소속이었던 이용호 의원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보호 종료 청년은 “이제 인터뷰도 지겨워요...어차피 자극적인 보도로 불쌍한 이미지만 강하게 만들 뿐, 저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라고 덤덤하게 웃어보였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