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 위험에 기초연금 차별까지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2년 전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때 국민은 불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2008년 12월 당시 초등학교 2년이던 어린이를 교회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끔찍한 행위를 저질렀다. 어린 학생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준 그는 심신미약으로 형량을 감경받아 2020년 12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국민은 전과 18범의 흉악한 아동 성범죄자를 고작 12년만에 풀어준 불합리한 형량에 공분했다. 지난달 임대계약 만료로 조두순과 아내가 이사하려다가 뒤늦게 신상을 파악한 임대 계약자와 인근 주민들이 집단 반발, 이사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출소 직후 근로 능력이 없는 노인이라며 배우자와 함께 국민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급여지원과 기초연금 지급을 신청했다. 기초연금 30만원과 2인 기준 생계급여 62만원, 주거급여 26만원 등 월 120만원 가량을 받게 됐다. 국민 세금으로 흉악범 노후를 보장해주느냐는 반발이 따랐고 청와대 게시판에는 ‘조두순에게 기초생활 수급지원금을 주지마세요’ 청원이 올라왔다. 범죄자라 해도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지원마저 끊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잔혹한 범죄행위에 대한 국민 분노가 기초연금과 지원 반대를 이끌었다. 잔혹한 범죄를 거듭해온 그가 무얼 잘했다고 다시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살도록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느냐는 반발이다.
 
평생 국민연금을 부었거나 붓고 있는 가입자들은 기초연금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마다 기초연금 확대가 공약으로 제시돼 증액이 이뤄졌다. 기초연금은 노인을 위한 공적 용돈으로 2008년 월 10만원 수준에서 시작했는데 지금 월 30만원에 이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중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기초연금 40만원이 되면 65세 이상 부부는 20%를 감액한 월 64만원을 받게 된다. 올 1월 기준 국민연금 평균 지급액 57만원을 뛰어넘는 액수다. 국민연금을 받고도 기초연금을 더 받는 게 아니라 국민연금 액수에 따라 기초연금 지급액을 감액한다. 소득상위 30%는 기초연금 대상에서 아예 빠진다. 세금 많이 내고 연금 보험료를 많이 부담한 가입자일수록 기초연금에서 외면을 당하는 구조다.
 
게다가 지난 9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에 따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연 2000만원 넘게 받는 수급자는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당해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다. 그동안 자녀나 배우자가 가입자일 경우 피부양자로 건강보험료를 물지 않았지만 11월부터 따로 보험료가 나왔다. “평생 연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낸 사람이 바보냐”는 항변이 절로 나왔다. 또 국민연금 도입 당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내용으로 설계돼 갈수록 재정이 취약해져 연금 고갈이 눈앞에 다가오게 됐다. 저출산·고령화 영향까지 겹쳐 2056~2058년으로 고갈 시기가 앞당겨질 전망이다.
 
기초연금에서 차별대우 받고 연금 재정은 간당간당하는데 가입자나 가입 대상자들의 인식이 좋을 리 없다. 소득 대비 국민연금 지급액인 대체율도 김대중 정부 당시 70%에서 60%로 낮춰졌고, 노무현 정부는 다시 40%로 단계적으로 내리게 했다. 현행 9% 보험료율과 40% 소득대체율이 지속될 경우 국민연금 재정이 2039년 적자로 돌아서 1990년생부터는 보험료를 내고도 연금을 못 받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5년마다 나오는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토대로 4가지 개혁안이 나왔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모두 채택하지 않았다. 가장 손쉽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미루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인기 없어도 연금과 노동, 교육 등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국정 최고책임자의 의욕만으로 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윤 정부는 최근 보험료율을 매년 조금씩 올려 15%로 인상하고 연금 받는 나이를 68세까지 점진적으로 늦추자는 복수의 개혁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연금개혁을 위해 정년연장과 노동시장 개혁 논의를 동시에 시작하자는 제안을 했다. 법률개정이 이뤄져야 가능한 방안이므로 연금개혁특위를 비롯한 국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도 관건이다. 국회특위는 내년 3월 재정계산을 토대로 논의를 거쳐 개편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지금도 사사건건 부딪치는 여야 대치로 보아 이마저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연금액이 흉악범 지원금에 못 미쳐서야

1990년대 생을 비롯한 청년층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크다. 주요 여론조사를 보면 2030세대의 연금 불신이 압도적이다. 여야 정당들이 선거철 마다 내놓는 대책 없는 복지공약은 부모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폭탄돌리기와 다름 없다는 비난이 거세다.
 
건강보험료 부담이 빠르게 늘어 반발이 거센 형편에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성사시키는 방안도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기초연금 등 선심성 지원은 늘고 가입자가 부담하는 국민연금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불균형을 방치해서는 연금개혁이 요원하다. 세대간 형평에 못지않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지원 사이에 끼어든 불신을 닦아낼 방안이 필요하다. 청년층은 기금 고갈을 걱정하고 수급자는 초라한 소득대체율과 흉악범을 위한 생활지원금을 비교하며 개탄하는 현실에서 국민연금이 입지는 갈수록 좁아진다. 보험료율과 수급개시 연령 조정이 관건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지원금을 통합운영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성실한 경제활동으로 꼬박꼬박 보험료를 물고 받는 국민연금이 사회에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흉악범의 기초연금, 생활지원금에도 못 미쳐서는 정상적이 사회라 할 수 없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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