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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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중국화, 득일까? 독일까?
1947년 3월 12일, 미국이 사회주의 진영에 놓인 국가에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표방하는 ‘트루먼 독트린(Doctrine)’을 선언하면서 소련과의 세력 다툼을 극대화했다.
이른바 냉전(冷戰)이라 명명된 당시 글로벌 체제를 반대하던 닉슨 대통령은 1969년 7월 25일 반(反) 트루먼 독트린이자, 대(對)아시아 정책인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는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곤,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해 그에 대처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닉슨 미국 대통령의 취임으로 1970년대 초 데탕트(détente·긴장완화) 시대에 돌입한 셈이다. 미국의 의식 전환은 긴장 완화를 불러왔고, 1979년 ‘미·중 수교’마저 성공시켰다.
트루먼 독트린이 선언된 지 75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새로운 냉전시대에 돌입했다.
앞서 2001년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중국의 경제력은 놀라운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막대한 성장력과 자본을 밑바탕으로 중국은 미국의 경제, 군사력 패권에 도전하며, 양국은 이른바 신(新)냉전체제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강한 대중국 정책을 통해 눈에 띄게 냉각된 양국은, 이윽고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반도체 패권’ 경쟁에 나섰다. 중국 반도체 산업을 주저앉히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은 더욱 강화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를 지배하려한다”며 “공산주의자(중국)로부터 미국과 동맹국들을 보호해야한다”는 명목 아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추가 제재’를 권고하며 7개 기업들을 추가로 블랙리스트(Blacklist)에 올린 바 있다.
또 올해 8월 16일,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이라는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골자로 한 법을 급등한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제정했다.
IRA가 발효됨과 동시에 산업계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는 해당 법안으로 인해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전기차 제조 내 중국 등 우려국가의 배터리 부품과 광물을 일정률 이하로 사용하도록 명령해 전기차 가치사슬(Value Chain)에서도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IRA에는 메탄 및 수소불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배출을 저감하며 전기자동차 및 에너지 저장시스템(ESS)에 대한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한다는 명목 아래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보조금(세액공제)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중국(해외의 우려 국가)에서 추출·제조·재활용된 광물이 일정 비율 이하여야만 한다.
미-중 경제적 패권 다툼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형국을 맞이했다.
특히 IRA 발효로 인해 중국산 광물과 소재에 의존하고 있는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은 제조와 조달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이 급속도로 ‘탈(脫)중국화’하려는 움직임을 띄며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일본은 지난달 IRA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핵심 전략물자의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반도체 등 11개를 ‘특정중요물자’로 지정, 1조엔(약 9조6,263억 원) 이상의 범정부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여러 기업들이 일찍이 움직인 탓에, 국내 기업들은 IRA 발효로 인해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15일 “IRA를 비롯한 탈중국 공급망 정책으로 증가하는 미국 내 전기차 수요의 상당 부분이 국내 배터리 기업을 통해 충당될 것”이라면서 특히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제도를 활용해 2025년까지 19조 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음극재의 경우, 중국이 세계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었지만, IRA 발효에 따라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국내 음극재 생산 업체로 포스코케미칼이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기업으로써 중국업체들이 미국에 진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한편 유럽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을 내년 도입할 예정으로, 이에 기업들은 관련 품목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해당 제도는 온실가스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으로부터 EU 업체들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탄소국경세’의 도입으로 인해 한국 주력 수출 품목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 또한 크다.
이외에도 유럽은 핵심원자재법(CRMA)도 동시에 추진하며 미국에 맞불 성격의 보호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는 미국 IRA 법안과 비슷하게 주요 광물 원자재 수급이 국제 분업구조로 불안해짐에 따라 유럽이 중국산 등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 다변화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이러한 서방의 연이은 탈중국화로 인해 발등에 불 떨어진 국내 산업계는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안이 사실화된 상태인 지금, 국내 산업계는 정부와의 치밀한 공조를 통해 발 빠르게 나서 북미·유럽 지배력 강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