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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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내내 통계청이 작성하는 국가 통계에 관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통계마사지 통계손질 통계왜곡 통계물타기 맞춤통계 분식통계 코드통계 보은통계 등등 온갖 비난 용어가 정부의 통계 생산 및 발표를 놓고 비아냥거린 기억이 생생하다.
요약하면 전(前) 정부가 각종 통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왜곡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새 정부는 이같은 통계 왜곡 행위가 “국가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감사원 감사를 하고, 여차하면 관계자들의 수사로까지 이어질 태세다.
통계가 조작되고 왜곡됐다면 누가 무슨 피해를 봤을까.
“무색무취한 숫자를 다소 마사지 한 게 대체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따져보면 문제가 가볍지 않다. 잘못된 정책으로 1차 가해, 그걸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 통계라는 중요한 하부구조를 망가뜨림으로써 3차 가해, 사회 전반에 대한 진실성을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4차 가해...
소득주도성장 통계를 손보는 과정에서 고용 취약계층이 불이익을 당했다. 무엇보다 통계라는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도덕성을 허물고 명예에 먹칠했다...” <박성희 이화여대교수, 한국미리학회 회장>
박성희 교수의 명쾌한 정리에 좀 덧붙인다면, 소득 및 고용 관련 통계를 왜곡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옹호함으로써 실패한 정책의 수정 기회를 막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소주성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저소득층 일자리 축소를 지속시켰다.
주택 관련 통계 왜곡은 집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판단에 중대한 착오를 일으키게 함으로써 서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말았다.
주택정책 관계 장관은 엉터리 통계를 바탕으로 20여 차례도 넘는 주택정책을 펼침으로써 시장을 왜곡했다. 그 결과는 정권을 넘겨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통계 왜곡 사례들 ...
소득 통계 파문. 2018년 5월 당시 황수경 통계청장은 1분기 소득통계를 발표한다. 소득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37% 급감, 소득격차가 최악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효과는커녕 저소득층 소득 격감을 초래했다는 증거로 소주성에 반(反)하는 통계다.
그럼에도 당시 문대통령은 “통계를 잘 분석해보니 최저임금 인상 긍정 효과가 90%다”라며 통계청 통계 수치를 부인하고, 나아가 소주성 정책의 부작용 내지는 실패를 정면 부인한다.
이 와중에서 황수경 통계청장이 부임 13개월 만에 전격 경질된다. 황청장의 이임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내가 그렇게 (정부)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다”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청장 재직중 통계의 독립성, 전문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후임으로 부임한 강신욱 통계청장은 적지 않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정책에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며 전임 총장과는 정반대의 통계관(觀)을 보인다.
주택 통계 왜곡. 2020년 6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KB금융 통계를 인용, 3년간 서울 아파트 시세가 52% 폭등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집값 급등으로 온 사회가 혼란한 시기였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부동산원 자료라며 “아파트 값이 14% 올랐다”고 발표한다.
괴리가 커도 너무 컸다. KB금융 부동산 통계는 오래 축적된 자료와 신뢰를 갖는 통계다.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입맛에 맞는 통계를 토대로 정책을 세운다.
이 와중에서도 대통령은 “집값이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강변한다. 시장을 대변하는 통계를 제쳐놓고 엉터리 통계를 바탕으로 만든 정부 정책의 결과는 뻔한 것.
일자리 통계 관련 코미디 한쪽. 문재인 정부 대표 정책 중 하나가 공기업 비정규직 제로화.
2019년 8월 통계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년 대비 87만여 명이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때 명장면이 연출된다. 비정규직 증가에 대한 강신욱 통계청장의 설명은 이랬다. 통계 조사 응답자 상당수가 비록 지금 정규직이지만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언제 짤릴지 모르니 나도 비정규직이다”라고 말해 그런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
국가 통계는 중립성 보장돼야 할 공공재(公共財)
통계 사전 열람. 최근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불거진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통계 사전 열람도 가볍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통계청이 정부 기관에 사전 제공한 통계자료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53건이던 것이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336건, 2018년 514건, 2019년 720건, 2020년 615건, 2021년 640건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통계법에서는 통계 작성과 공표과정에서의 영향력 행사 및 누설을 금지한다. ‘관계기관이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경우’ 등에 매우 예외적으로 사전 제공이 허용되지만 이처럼 사전 제공이 많은 이유가 석연찮은 것이다.
통계의 중립성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의 중요 정책을 수립하는데 기초가 되는 통계가 왜곡 조작된다면 이를 토대로 한 정책은 올바를 수가 없다.
국가 통계는 공공재(公共財)로서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다.
유독 문재인 정부에서 통계 왜곡 논란이 잦았던 이유가 뭘까. 주요 경제 정책의 실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가 싫고, 실패에 따른 자신감 결여와 초조감이 정책 수립 집행자들로 하여금 통계를 손질해서라도 넘어가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보는게 정설이다.
통계 감사를 실시 중인 감사원에 바란다. 전 정권의 통계 왜곡 행위를 낱낱이 밝히되 처벌 망신 주기 차원에서 이뤄져선 안된다.
왜곡의 실상과, 이로 인한 부작용 및 피해 등을 철저히 밝혀 백서(白書)로 역사에 남기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