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새해 첫 달부터 또다시 기준금리가 인상됐다. 사상 첫 7번 연속 인상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집값 하락이 지속되면서 ‘깡통전세’가 더윽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손해를 보고 임대인은 임차인의 강제경매로 집을 날리는 피해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깡통전세란 집을 처분해도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전셋집으로,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권 설정 금액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으면 통상 ‘깡통주택’으로 간주된다.
 
잇단 기준금리 인상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증가, 임차인의 경매신청이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경매 전문업체 지지 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임차인이 집주인을 상대로 경매를 신청한 규모는 121건으로 작년 1월의 54건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매수세 위축으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급락, 낙찰가가 임차인 보증금에 못미치면서 집주인은 집을 날리고 대항력을 갖춘 세입자도 손해를 보는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세입자들의 중도해지도 늘고 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전·월세 계약을 연장한 경우, 세입자는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세입자는 개인 사정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3개월 전에 집주인에게 통보하기만 하면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한 공인중개사 중개보수를 한 푼도 부담하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받아 나갈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빌라와 오피스텔을 대량 보유한 일명 ’빌라왕‘들이 잇달아 의문사하면서 세입자들이 전세보증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전세사기 대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전세 사기의 역사는 전세 제도만큼이나 유구하다. 농촌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대거 서울로 몰려든 1960~70년대에는 살 집이 턱없이 모자라 이사철마다 10~20%씩 전셋값이 올랐다. 이에 따라 전세 사기도 기승을 부렸다. 당시 수많은 전세 피해자가 생겨났지만 세입자에 대한 법적 보호망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1981년에야 비로소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전세 사기 수법 또한 교묘해지면서 피해 규모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요즘 전세 사기는 건축업자가 시세파악이 힘든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을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빌라왕’ 등 이른바 ‘바지사장’에게 명의를 넘기면서 이를 기준으로 전셋값을 높게 책정한 뒤 고객을 꼬드겨 고액의 전세보증금을 받아 잠적하는 수법이 주로 동원된다. 임대인 외에 공인중개사, 모집책 등 여러 명이 사기에 가담하는 등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전세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는 대부분이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 서민 등 취약계층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 사기로 의심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거래 106건의 피해자 중 30대(50.9%)와 20대(17.9%)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주택난이 심한 서울(52.8%)과 인천(34.9%)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청년과 서민들은 벌어놓은 돈이 부족해 아파트 전세는 꿈도 꾸지 못하고 전월세가 저렴한 빌라로 몰리게 된다. 특히 신축 빌라는 정확한 시세를 알기 어렵지만 전세가가 아파트보다 저렴하면서도 깨끗해 청년층의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세사기범들은 청년층을 표적으로 정하고 사기를 친다.
 
전세 사기는 악질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다. 정보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 계층과 주거 불안에 몰린 경제적 약자를 먹잇감으로 삼아 젊은 세대의 꿈과 희망을 앗아가고 빈곤층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응징돼야 할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법적·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사기범이 잡혀도 피해 구제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예방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최근 국회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임대인의 미납 국세를 열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고무적이다. 국토부가 깜깜이 신축 빌라 시세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안심전세' 앱을 이달 중 출시하기로 한 것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셋값이 원천적으로 폭등하지 않도록 정부가 정교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아울러 유사시 임차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세보증제도도 더욱 확대, 보완돼야 하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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