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postmaster@todaykorea.co.kr
기자페이지
고독사(孤獨死)이다. 명절 즈음해서 빠지지 않고 전해지는 비극이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갈수록 늘고 있다
고독사는 이제 어느 가정, 어느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관련 법이 만들어졌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책이 수립되고는 있으나 좀더 체계적이고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고독사란 뭔가. 모든 죽음이 고독과 무관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법이 정의하는 고독사는 외로움과는 다르다.
‘가족 친척 등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된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말 국내 최초로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충격적이다. 지난해 고독사는 3378 명으로 최근 5년 사이에 40%나 늘었다. 전체 사망자 31만7680명 중 1.1%(3378명)가 고독사다.
급증하는 고독사
성별로는 고독사 중 남성(2817명)이 여성(529명)보다 5.3배 많았다. 고독사 연평균 증가율은 남성 10%, 여성은 5.6%였다.
연령별로는 50~60대 중장년층이 고독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50~60대 비중은 52.8~60.1%, 20~30대는 6.3~8.4%다.
고독사 장소로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연립 빌라 등 주택이 50.3%, 아파트 22.3%, 원룸이 13%다. 고독사 자살 비율은 연령이 낮을수록 높았다.
50대가 16.95, 40대가 26%였으나 20대는 56.6%, 30대는 40.2%로 조사됐다.
고독사의 대부분은 가족과 연락이 끊기거나 주민등록조차 말소된 무연고자들의 죽음이다. 수명을 갈수록 길어지지만 가족해체 1인 가구의 증가, 이웃 공동체의 붕괴, 플랫폼 노동과 같은 나홀로 일자리 증가 등으로 사회적 연결망이 이완되면서 고독사가 늘고 있다.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3.4%에 달한다. 고독사 증가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특히 50~60대 중장년 남성 고독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 이들이 고독사 위험군(群)임이 드러났다.
정년 등으로 인한 실직과 인간관계 단절, 가사노동 미숙, 건강 악화 같은 요인들이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여자와 달리 생각의 유연성이 줄고 사회적 적응 속도가 느려 소외되고 고립되기 쉽다는 것이다.
고립 은둔형 청년 문제 심각
청년 고독사도 문제다. 30대 이하 연령층의 고독사는 증가 속도는 느리나, 극단적 선택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 높다.
청년 고독사는 학업 취업 스트레스와 실직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고립 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서울에 사는 만19~39세 청년 중 4.5%가 고립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최대 13만여 명의 청년이 고립 은둔 상태라는 것이다.
‘고립’은 생활고 등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거나 가족 친척 이외에 대면 교류를 하지 않는 상황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은둔’은 외출을 거의 안하고 집에서 생활하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유지되고 최근 한달간 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로 규정하고 조사한 결과다.
고립 은둔으로 파악된 청년 486명 중 45.5%는 ‘구직에 어려움을 겪었거나 실직’한 경우다.
이어 ‘심리적 또는 정신적 어려움’(40.9%) ‘인간관계 형성의 어려움’(40.3%%) ‘집 밖에 나가는 게 귀찮음’(39.9%)등이 은둔 고립 생활 이유로 꼽혔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 은둔 청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일본에선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백수를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ning)이라 일컸는다.
니트족이 증가하면 은둔 청년도 덩달아 증가한다. 니트족이 장기화해 집에 틀어박히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된다.
이번 서울시가 분석한 고립 은둔 청년은 일본의 니트족과 히키코모리의 중간 쯤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립 은둔 청년을 위한 종합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학병원 및 뇌과학 진단 프로그램 등을 통한 상담 확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마음건강 비전센터’설립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내실 있는 고독 대책 시급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독 문제 등에 관해 적극 대처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했다. 900만 명이 고독을 느끼는데 600만 명은 고독을 감춘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자, 고독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만성화된 고독은 건강을 해치고 생산성을 저하시키므로 의료 경제 등에 부담을 주는 사회문제로 본 것이다.
노인 고독사 문제가 오래전부터 심각한 일본도 지난해 초 ‘고독 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 고독 문제에 국가가 적극 대처하기 시작했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고독 고독사 고립 은둔 등의 문제는 이제 세계 공통의 이슈로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고독사 예방법)이 제정돼 시행중이다.
정부는 금년중 고독사 예방 관리를 위한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키로 하는 등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연결되는 고리 없이,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세상을 떠나는 고독한 죽음을 사회가, 국가가 방치해선 안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