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새해 벽두부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국회가 올해 예산안을 통과시킨 지 불과 1개월 만에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가 도대체 새해 예산안 심의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도 2년 연속 그러니 어안이 벙벙하다. 하지만 정치권의 재졍 중독 상태와 뻔뻔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설 연휴 기간중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난방비 폭등 문제였다”면서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핀셋 물가지원금 등 30조 원 규모의 9대 긴급 민생 프로젝트에 대한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권이 민생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고맙고 가상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원유와 천연가스 값이 치솟아 난방비가 많이 드는 겨울철에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익히 예견했던 사항이다.
 
그런데도 새해 벽두부터 추경을 하자는 것은 국회가 올해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이러한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올해 예산이 말로만 민생예산이지 실제로는 의원들이 원하는 엉뚱한 곳에 예산을 배정한 짬짜미 예산이라는 것을 정치권 스스로 실토한 셈이다.

물론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추경 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단 선을 긋고 나섰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집권 후 처음으로 편성한 올해 예산 집행 초기부터 재정 건전화 의지가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사실 여당 일각과 정부에서도 "경제 상황과 재정 상태를 봐가며 늦지 않게 추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어서 올 하반기에 가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도처에서 추경편성 주장이 봇물을 이루지 않을 까 심히 우려된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성장이 무척 저조할 것으로 보고 재정의 65%를 상반기에 집행하기로 했다. 이는 상반기에 투입할 재정의 약 절반 정도로 하반기를 버티겠다는 얘기다. 역대 최고 수준의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성장률이 1% 아래로 떨어질 경우 하반기엔 추경이 불가피할 공산이 크다.

재정건전화를 도모해야 할 정부조차도 사실상 이에 동조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 "상반기 집중 집행한 것들(재정)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봐야 한다. 하반기쯤엔 추경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현재 정부가 예측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기흐름을 보인다면 추경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경제상황이 충분히 변할 수 있어 요건이 생기면 검토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확정하고 2024년 예산안부터 이를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무산됐다. 이 방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 3% 이내로 관리하고,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서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이다.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 입법을 내달 열리는 임시국회서 재추진할 계획이다.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점을 되새겨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각오다. 기재부는 재정 건전성을 점검하기 위한 다양한 세부 지표를 발굴하는 작업에도 돌입했다.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서두르는 가장 큰 이유는 빠르게 늘고 있는 국가채무 때문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5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추경을 편성하는 등 방만한 예산 운영으로 국가채무를 400조원 이상 증가시켰다. 이로 인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추경을 편성하지 않더라도 1134조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디스와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러한 한국의 재정 전망에 대해 경계감을 표시한 상태다.
 
재정준칙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준수돼야만 하는 일종의 '안전벨트'이다. 물론 재정준칙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은 재정준칙이 있는데도 현재 연방정부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스도 재정준칙이 있었지만 지난 2010년에 국가부도를 냈다.

재졍준칙이 있어도 이러한데. 하물며 준칙조차 없이 어떻게 재정건전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 뿐이다.
 
한국은 국가채무 비율이 50% 수준으로 타국에 비해 무척 양호하다고 한다. 그러나 비영리 공공기관과 비금융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하면 70%에 육박한다. 여기에 연금 충당 부채까지 포함하면 2018년에 이미 106%를 넘어섰고 2024년에는 130%를 초과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와 있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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