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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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편리함을 주는 대신 환경을 앗아가는 현실을 보여줬다. 플라스틱이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논제는 꾸준히 대두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책 마련은 환경이 파괴되는 속도보다 더딘 상황이다. 몇십 년 전 매립된 채 썩지 않은 플라스틱 위에 새로운 플라스틱이 꾸준히 쌓여가고 있다.
유럽 플라스틱 산업 협회인 플라스틱스유럽(Plastics Europe)에 따르면, 2020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8년보다 800만 톤 증가한 3억 6,700만 톤에 달했다.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5년과 비교했을 때 2030~2035년에 두 배, 2050년에는 세 배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시민이 움직여야 기업과 정부가 압박을 느껴 문제 해결에 나선다’라고 한다. 시민이 움직이지 않으면 기업도, 정부도 플라스틱 문제를 외면할 것인지 되묻고 싶다. 문제를 떠넘기는 동안에도 지구는 플라스틱으로 질식하고 있다.
문제는 플라스틱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재활용률 집계 방식이 유럽연합(EU)과 다르다는 점 또한 국민의 혼란을 가중하는 원인이다.
플라스틱을 버릴 때 ‘뚜껑과 고리를 어떻게 버릴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페트병 음료 본체는 대부분 투명하고 가벼운 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 재질로 만들어진다. 뚜껑과 이를 제거하고 남은 고리는 HDPE(고밀도폴리에틸렌)이며, 라벨은 PE(폴리에틸렌)으로 구성됐다. 모두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재질이다.
서로 다른 플라스틱 재질이 섞이면 재활용이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분리배출 방법을 두고 정부와 업체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환경부는 “플라스틱은 압축하고 분쇄하는 과정을 거치면 작은 조각으로 변한다. 이 조각을 물에 담그면 PET의 경우 비중이 높아 가라앉지만, PE와 PP(폴리프로필렌)는 떠오르기 때문에 뚜껑을 함께 배출해도 선별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플라스틱 가공업체 관계자는 “비중의 높낮이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재질별로 선별할 수는 있지만, 플라스틱 조각에 이물질이 묻는 경우 (재질이) 뒤섞여 버린다”라며 “페트병의 본체와 뚜껑, 그리고 링까지 분리해서 배출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재활용 업체 관계자들은 기업의 플라스틱 단일화를 주장했지만, 플라스틱의 용도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마저도 어렵다는 게 환경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기업과 정부가 플라스틱 문제를 두고 뒷짐 진 것은 아니다.
현재 환경부는 기업의 책임을 제품 생산부터 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물에까지 적용하는 제도인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을 실시하고 있다.
재활용의무를 지고 있는 기업은 대상 제품과 포장재 품목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 ‘재활용 의무율’에 따라서 EPR 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제품에 있어서는 대상 제품을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모든 제조업자와 수입업자 재활용의무를 지켜야 하며, 면제 기준은 없다.
다만 포장재에 있어서는 기준치에 미달 시 재활용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허점이 있다. 제품에 있어서는 면제 대상이 없지만, 포장재에 있어서는 매출액, 수입액, 출고량, 수입량 등에 따른 면제 대상이 존재한다. 즉, 같은 플라스틱을 배출하지만, 사업장의 규모와 매출에 따라서 면제가 가능하단 뜻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환경부가 공개하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해외 사례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만큼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린피스 코리아는 “정부가 부풀려진 수치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2017년 OECD 환경성과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폐기물의 80% 이상을 재활용하는 모범국가로 꼽힌다. 물질회수율도 OECD 평균을 웃도는 59%에 달한다. 그린피스는 여기에 ‘허수’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에너지 회수’다.
그린피스는 “‘에너지 회수’란 플라스틱을 태워서 에너지를 만드는 일종의 소각이다. 이 에너지 회수가 국내 재활용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라며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폐기물 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폐기물 처리법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은 재활용과 에너지 회수를 구분하고 있다. 그 결과 재활용률은 약 40% 정도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국내 재활용률은 22.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플라스틱을 두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지만, 정작 규제를 위한 통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그린피스는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확한 통계에 기반해 국가 정책과 규제를 추진해야 하지만, 현재 우리가 얼마나 쓰고, 버리고, 재활용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라며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정책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통계가 없다는 것은 쓰레기 처리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플라스틱은 매립되고 소각되면서 산, 바다, 하늘에 쌓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잘게 부서져 ‘미세 플라스틱’으로 불리는 이 조각은 우리 몸 안에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우리는 플라스틱이 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익숙함에서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편안함의 대가는 누구에게 돌아올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