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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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비속어 오염 반드시 극복해야
당구에는 3쿠션과 포켓볼, 스누커 등 다양한 세부 종목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주로 3쿠션과 4구를 많이 친다. 안정된 자세와 기초 체력을 요구하는 3쿠션은 등록 선수층이 두껍고 이를 즐기는 동호인도 많은 편이다. 특히 쿠션을 이용해 공을 맞히는 감각에만 집중하기보다 당점과 회전에 따른 구질의 변화와 함께 수학처럼 공식화된 시스템 원리를 적용하면 기량이 빨리 늘고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우리 선수가 거듭 뛰어난 성적을 내면서 당구에 입문하는 신진 유망주들이 급증했다. 전국 당구장 수가 2만여개에 이르고 2019년 세계 최초로 남녀 프로당구 PBA/LPBA 3쿠션 투어가 국내에서 출범, 스포츠 산업화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외형은 그랬다. 그러나 내실을 따져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즐거운 기분으로 당구장을 찾았다가도 테이블 곳곳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비속어와 왜색 용어를 듣게 되면 여기가 대체 어느 나라인지, 과연 스포츠 시설이 맞는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당구공을 ‘다마’로 부르는 왜색 용어는 자칫 우리말로 착각할 만큼 뿌리 깊이 침투해 있고 ‘기리까시’ ‘다대까시’ ‘가라꾸’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본식 용어가 판을 친다. 당구공이 멋있게 맞으면 ‘기레이!’ 일본어 탄성과 함께 박수가 나온다. 어깨 넘어 어설프게 당구를 배운 중장년층만이 아니다. 중고생들까지 일본식 용어를 입에 달고 친다. 어른들이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니 그대로 대물림된다. 일제 치하에서 나라를 찾고 몇 세대가 흘러 80년을 바라 보지만 당구 동호인들의 세월은 그대로 멈춘 느낌이다. 심지어 ‘똥창’ ‘빵꾸’ 등 비속어까지 뒤섞여 언어에 관한 한 당구장은 낯뜨거울 정도로 한참 뒤떨어졌다.
정체성 혼란에 스포츠 산업화 난망
아무리 당구장이 많고 동호인이 1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저변을 갖췄다 해도 경기 용어가 잡동사니 수준으로 바닥에 깔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국민 스포츠로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앞서간 프로 야구나 골프처럼 스포츠 산업화를 통해 당구장과 용품제작 등 관련 업계의 발전을 도모하기는 더욱 어렵다. 프로 당구 출범 직후 몰아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당구장 업계는 몇년째 매출이 격감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프로당구협회(PBA)가 국어문화원연합회와 손잡고 얼마 전부터 ‘당구 용어 바로 쓰기’ 캠페인에 나섰다. 예를 들면 [우라마와시→뒤돌리기, 오마와시→앞돌리기, 니주마와시→대회전, 오시→밀어치기, 수구→내공] 등으로 잘못된 쓰임과 바른 쓰임을 구분해 동호인들에게 널리 알리도록 당구장에 포스터로 배포했다. 그동안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당구연맹(KBF) 등의 올바른 당구 용어 캠페인이 여러 차례 시도된 적이 있지만 추진력 부족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종목이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기규칙과 용어를 통합 정비하는 일이 선결 과제이다. 팬들이 호응하고 기꺼이 성원에 나설 수 있도록 바닥을 다지지 못하면 한때 인기는 곧 시들해진다.
경기 용어는 의미와 정체성이 분명해야 통합의 효과를 내게 된다.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모멸감까지 들게 하는 왜색 용어와 비속어는 스포츠 현장에서 반드시 추방해야 한다. 방송 해설자와 선수들은 바른 용어를 쓰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으나 동호인들의 호응이 관건이다. 무의식중 튀어나오는 잘못된 용어를 부끄럽게 여겨 동호인들이 바로 쓰기 캠페인에 동참해야 당구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올라간다. 왜색 용어를 당구 전문용어로 착각하는 몰지각한 동호인들의 언행은 저열한 인식을 확산시킬 뿐이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