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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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거나 쌀값이 과하게 떨어지면 국가가 이를 사들인다는 내용이다.
양곡관리법은 국가 식량안보와 농민들의 생계유지를 모두 잡는 ‘일석이조’ 효과를 보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내 식량자급률과 시장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국내 식량자급률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식’이라 할 수 있는 곡물 자급률의 경우 같은 기간 23.7%에서 20.2%까지 하락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쌀 공급이 과잉돼, 쌀값이 하락할 정도인데 왜 곡물 자급률은 하락했나?”라는 것이다. 국내 식량자급률은 2016년 50.8%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 2020년에는 45.8%까지 하락했다.
그 이유는 쌀을 제외한 기타 곡류의 자급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쌀의 국내 자급률은 90%를 넘어섰다. 반면 현재 기준으로 밀의 자급률은 1.2%에 불과하며 콩 역시 25.3%로 굉장히 낮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꺼내든 카드가 ‘전략작물직불제’다. 해당 제도는 밥쌀용 벼를 재배하는 논에서 밀이나 콩과 같이 수입에 의존하는 작물을 재배하면 기본형공익직불금 외에 추가적인 선택형직불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세부적으로는 겨울철 식량작물이나 조사료를 재배하면 ha당 50만 원을, 여름철 논 콩이나 가루 쌀을 재배하면 10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여름철 조사료를 재배하면 430만 원을 지급하며, 겨울철 밀‧조사료와 여름철 논 콩‧가루 쌀을 이모작하면 1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이를 쉽게 풀어 말하면 쌀농사를 짓던 농지에 가루 쌀이나 콩, 밀 등 각종 조사료를 재배하면 일정 면적의 농지당 정해진 돈을 국가에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를 통해 쌀 공급 과잉과 기타 곡물 부족 현상을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해결책을 내놓은 것인데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런 노력이 수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농식품부 정황근 장관은 지난해 12월 28일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산업의 지속적인 유지와 발전을 위해 진행했던 그동안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것”이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쌀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농업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왜 법 개정을 강행하는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위 내용을 종합해보면 현재 쌀 공급 과잉으로 쌀값이 떨어지고 쌀 재고가 남기 때문에 농민들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작물직불제도는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농민들에게는 정해진 수익을 보장해주고 국가에서는 쌀 뿐만이 아닌 다른 곡물류의 자급률도 끌어올릴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농민들 입장에서도 굳이 새로운 도전을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역시 불분명한 상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해당 개정안이 시행되면 길게 봤을 때 오히려 쌀값을 더욱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원에 따르면 쌀 시장격리 의무화와 타작물 지원사업을 동시 시행하는 경우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2030년까지 쌀 가격은 17만 6476원 수준이 된다. 쌀 초과공급량은 43만2000톤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쌀 수급과 관련해 어떤 정책도 취하지 않았을 때 추정되는 연평균 쌀 초과공급량(20만 1000톤)보다 2.15배 많고, 쌀 가격은 재량적 시장격리에 나선 올해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특히 2027년 기준 한 해 과잉 쌀 수매에 사용되는 예산이 1조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남는 쌀에 대해 무조건 수매를 해주는 상황이 되면 농민 입장에서는 굳이 쌀의 공급량을 조절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축산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솟값 하락이 이를 증명한다.
2018년도부터 농림축산식품부는 “현 상황이 지속되면 사육 두수 증가로 과잉 공급이 우려된다”며 “사육 두수를 자체적으로 조절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암송아지 출하 약정에 농가가 자율적으로 한 마리를 추가해 비육하면 자조금 3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사육하는데 들어가는 사룟값보다 소 판매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상황이 됐다. 물론 현재 솟값 하락이 사육두수 과잉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관계가 아예 없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는 결국 게임이론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죄수의 딜레마는 1950년에 미국 랜드 연구소의 과학자 ‘메릴 플러드’와 ‘멜빈 드레셔’가 시행한 게임이론 연구에서 시작된 이론이다.
두 공범자 A, B가 함께 범죄 사실을 숨기면 둘 다 형량이 낮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범죄 사실을 수사관에게 알려주면 자신의 형량이 감경된다는 말에 혹해서 상대방의 범죄를 폭로함으로써 결국 둘 다 무거운 형량을 받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국 두 죄수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을 했다가 공멸하는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다.
현재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나 소 가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사육두수나 공급량을 줄이는데 자발적으로 협조한다면 가장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생산량을 줄인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각자의 생계와 직결된 생산량을 줄이는 농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결국 게임이론의 두 공범자와 같이 농민들이 함께 피해를 가중하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현 상황과 같이 부득이한 상황 속에서 전략작물직불금과 같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올바른 방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