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안전지대 아냐”···철저한 대비 나설때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사고 발생 보름째를 맞은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은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다음 단계로 접어드는 흐름이었다.

사실상 대부분 지역에서 수색·구조 활동을 종료하고 이재민 구호와 무너진 주택과 건물, 사회기반시설 복구 작업 등 재건 활동으로 치환되는 상황이었다.

외신들은 외국에서 파견 온 구조팀들은 대부분 귀국했고, 튀르키예 당국을 중심으로 수색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남부 지역에서 총 8명의 생존자를 구해낸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1진 118명도 지난 18일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대신 이재민 구호로 임무를 전환한 긴급구호대 2진 21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폐허가 된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또다시 규모 6.4의 지진이 강타하면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재산 및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전체 사망자 수가 4만7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첫 번째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 근처에서 2주 만에 또다시 여진이 발생해 일부 건물이 붕괴하고 추가 매몰자가 생기면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오후 8시4분 하타이주 안타키아 서남서쪽 16㎞, 지하 10㎞에서 6.4 규모의 여진이 일어났다. 하타이 당국은 이번 지진으로 안타키아 등지에서 건물 다수가 붕괴하면서 일부 시민이 매몰됐고,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이날 현재까지 튀르키예의 지진 사망자가 4만1156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날 4만689명보다 467명 늘어난 결과다. 접경국 시리아 당국과 반군의 사망자 집계치는 5939명에 달했다. 이를 토대로 양국을 합친 전체 사망자 수는 4만7095명으로 증가했다. 외신들은 새로운 지진으로 붕괴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건물은 38만5000채로 매몰자가 늘어나면서 사망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발생한 강력한 여진은 피해가 가장 컸던 튀르키예 하타이주 데프네를 중심으로 다시 발생했다.

지난 6일 새벽 터키 남동부와 시리아 서북부지역을 강타한 대지진(강도 7.8)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100년내 최악의 자연재해’라는 표현을 실감나게 할 만큼 엄청난 재앙이었다.

튀르키예에서 첫 지진이 발생한 이후 6000번 넘는 여진이 발생하고,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사망자는 5만명에 근접한 것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다. 시리아 북부지역은 당초 세계보건기구(WHO)가 사망자 규모를 9300명(정부 통제지역 4800, 반군 장악지역 4500명)으로 추정했으나 사망자 집계가 5천명 대에 머물러 있다. 시리아의 경우에는 내전으로 정확한 통계 작성이 어려워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에 따르면, 20일 현재 튀르키예 동남부 피해 지역에서 대피한 이들은 모두 120만여 명이고, 현재 1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피해지역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튀르키예 남동부 10개 주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26만4,000채의 건물이 붕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접근조차 어려워 현장은 공포와 충격 그 자체로 생지옥을 방불케 하고 있다. 관계 당국은 피해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고, 출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산사태와 낙석 등 ‘2차 재난’에 대해서도 대비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튀르키예가 최근 강진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튀르키예기업연맹(튀르콘페드)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6일 발생한 지진으로 840억 달러(약 107조원)가 넘는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번 대지진은 여러 측면에서 해당 정부의 재난 관리에 대한 총체적인 부실과 난맥상, 야수(野獸)같은 인간 이기심의 민낯을 여실히 들여다보게 됐다는 점에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많은 나라와 정부가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사전 예방과 정비작업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나마 이번 희생이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번 참사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대형 재난을 대하는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것은 필자 혼자만이 아닐 것으로 본다.

먼저 튀르키예 에르도안 정부의 대응을 보자.

지난 1999년 8월 튀르키예 북서부 강진 당시 정부의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론을 등에 업고 국가지도자에 오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은 정작 지진이 나자 더 심각한 부실대응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당시 지진 규모는 이번 강도 7.8과 비슷했고, 피해규모도 엄청나 1만 5082명이 숨지고 2만 3983명이 다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튀르키예는 1939년 에르진잔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4만 5천명이 목숨을 잃는 등 그동안 강진피해가 많았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며 당시 정부를 강력 규탄해 에르도안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집권하면 내진(耐震) 설계를 필수화하는 등 지진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 그 다짐은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무려 20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자신들과 가까운 재계 인사들에게 건설 붐의 혜택을 나눠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2008년 에르도안 정부는 도시계획구역 사면법을 통과시켜 관련 인허가 없이 지어진 건물에도 철거를 하지 못하게 하는 면죄부를 줬다. 돈을 받고 부실공사를 봐줬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더 나아가 ‘지진세(地震稅)’도 논란이다. 24년 전 강진 후 내진형 건물을 세우겠다면서 6조원 가까이 거둔 지진세가 어디에 쓰였는지 오리무중인 상태다.

집권 초 전국에 지진위원회를 발족했던 에르도안의 정치적 위기는 2021년 33% 인상했던 ‘지진세’ 의혹으로 커지고 있다. 2000년부터 모든 주택 소유자가 납부한 지진세 세수 규모는 23년간 880억 리라(약 5조 9000억원, 현재 가치 환산 시 45조원)로 추산된다. 그는 수차례 지진세 내역과 잔액 행방을 묻는 야당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불법 증축과 날림 공사로 지어진 건물 4만 7000채 이상이 붕괴됐고, 잔해 속 실종자도 아직 수만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완공한 대형 건물마저 주저앉은 걸 보면 “지진 자체보다 부실 건물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을 만하다.

피해 현장을 사흘 만에 방문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첫 조치는 구호가 아닌 ‘국가애도기간’과 비상사태 선포였다. 그는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허위 비방을 한다”며 소셜미디어(SNS)를 차단했다.

여기에다 재난위기관리청(AFAD) 대응인력이 지진발생 24시간이 지나서 처음 도착한 것을 비롯해 구조대가 피해 현장에 늑장 출동하는가 하면 24년전 지진 당시 신속히 현장에 배치됐던 군 병력을 피해 현장 복구에 동원하는데만 이번엔 이틀이 걸렸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에르도안 정부의 총체적 부실이 이번 지진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그러자 에르도안 정부는 엉뚱한 대응을 해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의 지진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 사태로 번지는 등 정권에 대한 민심이 급속하게 이반되자 에르도안 정부는 뒤늦게 부실시공과 관련해 100여명의 하도급 업자 등을 무더기 체포하고 수십명을 구금 조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잔챙이들만 잡아넣고 인허가 관리와 건설 대기업은 손도 못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지진으로 집권한 그가 지진으로 물러나게 됐다”(오는 5월 14일이 총선)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들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정부의 ‘구조 태만’ ‘지진구조 지연’ 비판 여론에 SNS 트위터 접속을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진 발생 초기에 “이처럼 큰 재난에 준비되어 있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튀르키예 지진이 예상외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온 것은 내진설계는 둘째치고 부실 건축자재가 문제라는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멘트가 만지면 부서질 정도에 철근도 제대로 섞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실제 피해건물 재로(0)인 도시가 이를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피해가 큰 하타이주의 여느 지역과 달리 소도시 에르진시에선 이상하게도 무너진 건물이 한 채도 없었다. 사망자도 당연히 없었다.

최초 강진의 진앙인 동남부 가지안테프에서 서쪽으로 불과 166km 거리에 있는 데도 말이다. 외케스 엘마소글루 에르진 시장은 2019년 취임 후 불법건축물을 용납하지 않는 ‘무타협 원칙’을 고수해왔다.

예외 없는 단속과 처벌을 밀어붙였고, 지진에 취약한 시설의 철거와 정비를 유도해왔다.

주민 4만 2,000명의 소도시 엘마소글루 시장이 강조한 것은 단 하나, '원칙'이었다. 그는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시장에 당선되자 건축물 관련 민원이 수없이 들어왔다. 자신의 (불법 건축) 건물에 대해서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취지였다. 나는 원칙대로 '절대 안 된다'고만 답했다"고 밝혔다.

엘마소글루 시장이 당선된 2019년은 튀르키예에선 내진 규제 강화법이 통과된 직후다. 법의 골자는 '지진 취약 지역의 건축물에 고품질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이를 철근으로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 북서부 대지진(1만 7,000명 이상 사망) 이후, 튀르키예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최신 보완판'이다. 만약 지진 피해 지역들에서 이 법만 제대로 지켜졌다면, 인명 피해 규모도 지금보다는 적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불법 공사를 100%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나는 분명한 양심으로 불법 건축을 어떤 식으로든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때로 마음이 흔들리는 산하 시 공무원들을 으르고 달래며 구습(舊習)과 결별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 공직사회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정말 한심하고 실망스러운 것은 시리아다.

12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58)은 피해지역을 5일만에 방문하는가 하면 당초 국제사회의 도움을 거부하는 패착(敗着)을 뒀다. 반군(叛軍) 점령지역이라는 이유였다.

시리아 정부는 사고 발생 4일 후 국제적 여론에 밀려 반군 장악지역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구호물품을 전달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번엔 반군들이 “시리아 정부가 우리를 돕고 있다고 선전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렸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보다 권력 유지와 정권 안보에 혈안이 돼 있다는 것으로 해석돼 국제사회의 공분(公憤)을 사기에 충분한 행동이다.

이에 반군 장악지역에선 이른바 ‘하얀 헬멧’(시리아민방위대, SCD)으로 불리는 민간구조대와 주민들이 팔을 걷어부쳤고, 변변한 수색 장비 없이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헤치거나 땅을 파헤치는 모습이 외신을 타기도 했다. 심지어 울음소리가 들려도 제때 구출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이들 지역 생존 주민들이 인도적 차원의 구호 물품 지원이 늦고 물량마저 태부족하자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는 절규를 토했을까.

이번 대지진은 또한 우의(友誼)와 연대(連帶, solidarity)의 중요성을 실감케 했다.

원천적으로 국력의 차이도 있겠으나,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에 따라 지원규모가 천양지차가 난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지원이 몰리는 튀르키예와 달리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시리아는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모습이다.

튀르키예는 미국을 비롯해 서방을 중심으로 무려 90여개국이 구조대와 구호 물품 등 인력과 물자를 대거 지원한 반면, 러시아에 경도된 시리아는 매우 저조했다.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가르침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한편, 여전한 ‘구조 사각지대’인 시리아 상황과 관련,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반군 장악 지역인 시리아 북서부에 대한 접근 문제가 아직도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며 “구호 물품 전달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군-반군의 교전과 테러까지 재개되며 주민들의 고통만 더 커져가고 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지난 16일 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지역 도시인 아타레브 외곽 지역을 포격했다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앙숙 관계인 이스라엘은 19일 지진피해 시리아에 미사일 공격을 가해 민간인을 포함해 20명의 사상자를 냈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을 보며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을 생각해본다. 규모 5.4로 국내에서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지진이었다. 포항지진은 진원(震源)의 깊이가 경주지진(2016년 9월 규모 5.8)보다 지표면에 가까워 피해는 더욱 컸다. 118명이 다쳐 치료를 받았고, 집이나 도로가 부서져 845억7천500만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도시 이미지뿐 아니라 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수많은 시민들이 꽤 오랜 기간 트라우마를 겪었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76회다. 해마다 지진 횟수가 연이어 증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3.0 이상 지진이 매년 10.8회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9일 새벽에는 인천 강화도 서쪽 해역에서 지진(규모 3.7)이 발생해 이 일대 주민들은 밤잠을 설쳐야 했다. 지난해 10월 충북 괴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한 지 70여 일 만이다. 이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 및 각급 지자체, 관련 기관의 경각심 제고와 함께 내진(耐震) 보강 등 철저한 점검 관리는 물론,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각종 대비책 마련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다.

기존 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는 대재난의 가능성을 통찰한 리베카 솔닛(61, 미국의 저술가, 비평가, 역사가)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거대한 비극 속 희망을 응시한다.

“재난은 우리가 선잠에서 깨어나도록 충격을 주지만, 우리를 계속 깨어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능숙한 노력뿐이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주민들이 부디 지옥에서 다시 낙원을 만들어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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