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1년 5개월간 이어진 금리 인상 행진이 멈추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 역대 가장 길었던 기준금리 연속 인상 기록이 정지됐다. 이번 동결은 물가보다는 경기 쪽에 무게 중심을 둔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일단 숨고르기로 분석된다. 정부가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인상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감안된 것으로 보여진다.
 
한은은 금리를 동결하면서 경제전망치도 수정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1.6%로 하향조정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종전 3.6%에서 0.1%p 낮춘 3.5%로 낮췄다.
 
여전히 고공행진하고 있는 물가과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감안할 경우 이번에 기준금리를 인상했어야 하는 것이 얼핏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의 취약성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시장 불안요인 등을 감안할 경우 그렇치 않다. 연 1%대 저성장이 예상되는 경기 상황과 가계 이자 부담 증대, 부동산 침체로 인한 금융 불안 가능성 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상반기 내내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의 수출 부진과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고 내수도 부진, 성장 모멘텀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소비가 둔화되고 있고 투자가 축소되고 있다. 특히 정부의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책에도 불구하고 미분양 주택 수가 정부가 위험선이라고 언급한 6만2000가구를 뛰어넘는 등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됐다"며 2월부터 경기둔화가 본격화됐다고 진단했다. 최근 경기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보니 정부가 하반기에 부양책을 내놓을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해 시중은행의 연체율이 일제히 오르면서 건전성 관리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금리가 더 오르면 대출 자금의 부실 리스크가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부채 부실화 위험이 높은 저소득층, 부동산 영끌을 한 청년 등 취약 차주에 대한 맞춤형 지원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대출금리 완화 대책까지 내놓은 정부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 더구나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우리 현실에서 금리 인상의 충격이 기업과 가계에 전이될 수 있다.
 
그래서 금통위는 인상 사이클을 일시 중단했다. 하지만 한·미 금리 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미 연준은 지난 1일 기준금리를 4.75%까지 올려 한미 기준금리차는 현재 1.25%p까지 벌어져 있다. 연준이 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p 인상을 결정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1.5%까지 벌어지게 되고 빅스텝를 단행하면 그 격차가 역대 최대폭으로 높아지게 된다. 미국 금리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두어 번(couple more) 금리 인상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예고를 한 바 있고 1월 ‘고용 서프라이즈’와 예상보다 높게 나온 1월 소비자·생산자 물가 지수로 인해 오는 6월까지 많게는 3차례 더 금리를 높여 5.5%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미 간 기준 금리 역전이 가장 길었을 때는 2005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였다. 이 기간중 최대 금리 차는 1.5%p였다. 그 이상은 가 보지 않은 길이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벌어지면 원화 약세로 대미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외국인 투자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수입물가 상승으로 무역적자가 발생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한은으로서는 미국 통화정책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한은은 당분간 그동안의 금리 인상 파급효과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 반 동안 10차례에서 걸쳐 기준금리를 3%p 인상한 만큼 ‘금리 인상 파급효과’를 지켜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환율이 1300원대 중반까지 치솟는 등 강달러 현상이 재연될 경우, 한은은 연준을 따라 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외환시장 불안을 고려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금통위원이 나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불씨가 살아있다는 점도 변수다. 지난 1월 물가상승률은 5.2%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고 기대인플레이션율도 두 달 연속 상승, 4%(2월)에 달해있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점차 둔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전기료와 교통 등 공공요금 줄인상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떨어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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