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와 문재인...퇴임후 너무 다른 행보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퇴임 후에도 사회봉사 활동은 물론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세계 곳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헌신하는 등 현역 시절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일부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동포애와 인류애를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중 퇴임 후 가장 괄목할 활동을 보인 사례로 지미 카터(98)를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카터 전 미국 제39대 대통령이 최근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시골 마을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기로 결정하자 주민들도 카터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마지막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땅콩 산지로 유명한 플레인스는 98세인 카터 전 대통령이 나고 자란 곳이다. 그는 1924년생으로, '가장 오래 산 전직 미국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이미 세웠다.

카터 전 대통령이 설립한 비영리단체인 '카터 센터'는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카터 전 대통령은 남은 시간을 조지아주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발병했고, 암이 간과 뇌까지 전이됐다고 한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건강 문제로 불참하는 등 거동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카터는 대통령 퇴임 후 자신의 고향에 50년 전 지은 집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도 유일하게 백악관 생활을 마친 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대통령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흔하지 않은 단임 대통령의 불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여느 전직 대통령과는 차별화된 행보로 시간이 가면서 더 빛을 발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보통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면 고액 강연이나 회고록 출간, 기업 이사회 활동 등을 하며 경제 활동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며 퇴임 후 자기 길을 갔다.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내 야망이 아니었다"는 카터 전 대통령은 몸소 실천하는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habitat)’ 활동과 중남미·중동 등지 저개발국의 부정선거 감시 활동, 질병 퇴치, 인권증진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 모범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암 발병 이후인 2019년 테네시주 내슈빌의 집짓기 현장에 나와 못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소형 농장주택에 살며 이웃집에서 소박한 식사를 할 만큼 청렴한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검소하면서 진솔한 삶의 모습이 퇴임 후 더욱 빛을 발하는,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칭송을 받게 했다.

비록 재임 중 경제문제를 해결못하고 이란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작전 실패에 발목이 잡혀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지만, 특이하게도 퇴임 후 정력적인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훨씬 더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그는 재임 기간(1977~81) 동안 국정수행 평가가 좋지 못했지만 백악관을 나온 뒤 카터 센터를 설립,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 문제 개선에 헌신하는 등 ’최고의 퇴임후 대통령‘으로 반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제 40대 대통령)에게 큰 격차(51% : 41%)로 패배, 연임을 놓친 아픔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 것이다.

2002년부터는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펼쳤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1994년에는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을 통해 제네바 합의의 물꼬를 텄다. 그는 이같은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에게 ‘퇴임 후가 더 아름다운 대통령‘이라는 영예가 주어진 이유다.

대한민국의 전임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를 보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달 중으로 북카페를 열어 ’책방지기'라는 '새 직업'을 갖는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말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이웃집 단독주택을 8억 5000만원에 매입했다. 이 단독주택은 사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호구역(사저 반경 300m) 내 1층짜리 건물로, 문 전 대통령은 이 건물을 책방(북카페)으로 쓰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상태이다.

문 전 대통령이 책을 좋아하는 성격에다 사저가 생기면서 조용했던 마을이 시끄러워져 스트레스를 받았던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책방을 열기로 했다는 것이 사저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산마을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가 만나 토론하는 공간, 평산마을 주민 휴식공간 등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독서 애호가인 문 전 대통령은 평소 책에 애착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SNS 등에 다양한 책 서평을 올리며 꾸준히 책 추천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친문(親文)의 구심점으로 정치적 논란을 자초할 개연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의 측근, 민주당 정치인들은 물론 소위 ‘문빠’ 등 강성지지층이 성지순례하듯 대거 이곳 책방으로 몰려들게 뻔하다.

친문세력을 규합해 세를 과시하고, 대놓고 현정부에 각을 세우는 대외활동을 요란스럽게 재개하겠다는 선언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현직 때도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갈라치기 정치로 국론 갈등과 분열이 극심했는데, 퇴임해서까지 팬덤정치에 대한 유혹을 버리지 못한듯하다는 날선 얘기까지 들린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정부 장·차관과 청와대 출신 주요인사 등이 지난 1월 18일 윤석열 정부의 '전 정권 지우기'에 대항하는 성격의 정치포럼 '사의재(四宜齋)'를 발족했다. 사의재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사실 왜곡을 바로잡는 한편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국정 운영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친문재인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구심점이 등장하면서, 진보 진영 내 권력 구도 재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포럼 명칭 ‘사의재(四宜齋, 네 가지를 마땅히 하는 집)’는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 유배 시절, 자신이 처음 유숙하던 주막집 할머니의 골방에 붙인 이름에서 따왔다.

강진군청의 사의재 문화해설에 따르면,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네 가지를 바로 하도록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사의재는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운영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세계 선도국가로 계속 발전하고, 최근 들어 급격히 실추되고 있는 국격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각종 대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정치사에서 직전 정부 중요인사들이 이런 포럼을 만든 예는 금시초문이다.

그동안 정권 교체 원인으로 지목되며 잠행했던 친문계가 사의재를 통해 목소리를 내면서 향후 총선 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평가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반성과 성찰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참회와 속죄는 책임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원장을 지낸 문용식 김근태재단 부이사장이 사의재 출범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자신 역시 이사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포럼 출범에 앞서 계승할 것, 성찰할 것, 대안의 방향 등에 대한 내부 합의가 부족해 보인다”며 “무엇보다 정권을 빼앗긴 데 책임이 큰 분들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회신하고 참여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책 실패와 인사 실패의 주요 당사자들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응에 앞서 사과가 먼저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부터 찾아 고치는, 반구제기(反求諸己)의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비주류 중진의원(5선)인 ‘쓴소리꾼‘ 이상민 의원은 지난 1월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대통령은 북카페 개소에 신중해야 하고, 정책포럼 ’사의재‘는 계파모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 현실적으로 바로 직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안정이 확실하게 돼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또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정치적 언동이나 정치적 메시지로 전해질 가능성이 있을 경우는 자칫 예기치 않은 트러블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국민들이 볼 때는 매우 불안하고 소모적 정쟁으로 확대 재생산될 안 좋은 상황이 될 것이므로, 자중 자제 절제하는 미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 사례가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재임 중 북한에서 선물로 받은 풍산개의 퇴임 후 파양(罷養) 논란은 말할 것도 없고, 서해 피살 공무원 아들에게 “진실 규명을 직접 챙기겠다”는 편지를 보내놓고도 약속을 저버렸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하고선 배우자 의상비, 딸 청와대 더부살이에 대해선 입을 닫아버렸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부정적 여론을 무시한채 정작 본인이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승만 정권이 만든 상훈법에 따라야 한다며 1억 3647만원짜리 무궁화대훈장을 수여받고 퇴임했다.

낙하산 보은인사 악습을 끊겠다고 했지만 임기말까지 알박기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더구나 집권 내내 국민을 갈라치기해 나라를 정신적 내전 상태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퇴임 후까지 진영 편향적 발언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면 전직 국가원수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처신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계속 정치권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퇴임 후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활발하게 자신을 알리는 데 열심(?)인데 잊힐 리가 있겠는가.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부터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왔다. 그는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며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3월 30일 서울 조계사에서 불교계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스로 밝힌 이런 당초 약속과는 다르게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 정권을 대놓고 비난한 2023년 신년사(新年辭)를 보자.

“유난히 추운 겨울입니다. 치유되지 않은 이태원 참사의 아픔과 책임지지 않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못난 모습들이 마음까지 춥게 합니다. 경제는 어렵고, 민생은 고단하고, 안보는 불안합니다. 새해 전망은 더욱 어둡습니다.”

정권을 넘겨주고 물러난 전직 국가원수가 후임정부 공격에 직접 나서는 이런 행태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취지를 깨뜨리는 일이라는 비판이 국민들 사이에 무성했다.

지난 1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자리에서 발언한 내용도 논란을 빚었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현 정국에 대해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역사가 퇴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정전 협정 70주년의 해인데도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안보 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면서 "미사일 발사나 무인기 등에 대해서는 강력히 규탄해야 하지만,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안보 무능에 대해서도 걱정이 된다"고 현 정부의 안보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공수신퇴 천지도야(功遂身退 天之道也)’.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의 가르침이다.

봄은 봄의 직분과 사명을 다한 다음에는 여름에 자리를 양보한다. 여름은 여름의 책임과 역할을 마친 다음에는 가을에 자리를 넘겨 준다. 이것이 하늘의 운행이요, 천지의 질서다.

인간도 자기의 직분을 마치고 공명을 다한 다음에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이것이 하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독서광인 문 전 대통령이 이 경구(警句)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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