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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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혈 경쟁에 부동산 PF 위험까지
정부는 서민금융을 살리기 위해 점포 규제를 단계적으로 풀고 2002년 업계 요구를 받아들여 사금고를 연상시키는 ‘신용금고’ 이름 대신 ‘상호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하도록 했고 2007년 ‘저축은행’으로 단축 명칭을 쓰도록 허용했다. 여수신 업무 외에 부대 업무도 취급 가능해 일반 고객들에게 점포 수가 적어 접근성은 크게 떨어져도 시중은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금융기관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저축은행은 이후 유상증자 및 후순위채 발행으로 자본금을 불려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고 지배주주의 장악력은 더욱 높아졌다. 2000년대 들어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자 높은 이자율을 조건으로 시행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호황기에 몸집을 불려 부동산 대출에 집중했던 부산저축은행부터 2011년초 영업정지 조치를 받았다. 이듬해까지 20여개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뱅크런’이 발생했다. 예금보험공사는 27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들여 31개 저축은행을 정리했다. 정부는 한국에서 문 닫는 은행이 속출, 금융산업이 다시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외신을 보고 과거 신용금고에 ‘은행’ 간판을 허용한 조치를 무척 후회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집값 하락과 함께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면서 부동산 PF 부실에 다시 경고음이 울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저축은행권의 부동산 PF 전체 규모는 10조7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8.5% 늘었다. 이 중 저축은행 연체 잔액은 3000억원 수준(연체율 2.4%)으로 집계됐다. 금감원은 부동산 PF의 부실화 위험을 낮추기 위해 저축은행의 PF 관련 여신한도를 완화하는 등 자율협약을 시행했다. PF 대출에 대해 총신용공여의 20% 등으로 묶여 있는 한도를 일시적으로 완화해 사업장에 신규 자금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유도한 것인데 막상 저축은행 재무 건전성 개선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시중은행과 예금 금리 유치 경쟁을 벌이다가 여력을 상실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 저축은행은 한때 연 6~7%의 고금리 특판과 평균 5%가 넘는 정기예금 상품을 내놓았다. 출혈경쟁의 후폭풍으로 저축은행의 수익은 급감했다.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 상승으로 예대마진이 크게 늘어 성과급 돈잔치를 벌였지만 저축은행은 사정이 복잡하다. 업계 선두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12% 감소한 2573억원에, OK저축은행은 41% 빠진 1164억원에 그쳤다.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이미 법정 최고인 연 20%에 근접해 있다. SBI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연 17%를 넘어섰고 OK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도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3.75%로 떨어졌다. 저축은행은 대체로 시중은행보다 1~2%포인트 높은 이자율을 내세워 예금 유치경쟁을 벌여왔는데 이제는 시중은행 금리를 밑돌거나 비슷하다. 사실상 예금 유치를 포기한 상태라는 비관적인 평가까지 나온다. 중·저 신용자들을 위한 서민금융기관이라는 저축은행이 설립 취지에 무색하게 고금리 대출에 매달려 빈축을 사게 됐다.
현실에 맞게 예금자 보호 높여야
대출금리가 올라가면서 지방 저축은행들의 연체율이 악화하는 등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과 세계적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의 위기로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국내 저축은행의 리스크관리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 유사한 사태를 막으려면 예금자 보호를 한층 강화하고 저축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대출과 리스크관리 등에 대한 지도 감독 수준을 높여야 한다. 22년 전 5000만원으로 설정된 예금자 보호 한도는 그동안 성장한 국내 금융산업의 규모나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은 수준이다. 한도가 낮으면 금융거래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져 금융의 안전성을 흔들 우려가 커진다.
10여년 전 부산저축은행 등의 사례에서 보듯 대주주들의 부당한 간여에 의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감독을 한층 강화하고 내부 역량도 키워야 한다. 내부 사정을 핑계로 예대마진 확대에 기울어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는 체질을 바꿔야 한다. 법정한도에 가까운 신용대출 금리를 낮춰야 ‘은행’ 간판에 걸맞게 인식을 제고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부실 점포 정리와 내부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자구노력이 시급하다. 저축은행이 타성에 젖어 과거 업보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업계 전체가 개편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