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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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이같은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결해 주기 위해 정부가 22일부터 '소액 생계비 대출' 사전 예약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예약 방식을 변경할 정도로 신청이 폭주했다.
일명 긴급생계비대출로 알려진 소액생계비대출은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의 저소득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100만원 이내에서 자금을 지원해 준다. 이 대출은 첫 이용시 책정되는 금리가 연 15.9%로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고 대출액도 무척 적지만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당장 10만 원이 없어서 애가 타는 사람들에게는 연 이자율이 3000%를 넘는 살인적인 금리로 단기 대출을 해주는 불법 사채시장보다는 현격히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부산에서 검거된 불법 사채업자 66명은 3500명에게 소액자금을 대출해주면서 연 4000%가 넘는 고금리 이자를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환을 하지 못하는 이용자에게는 몸까지 팔라고 협박을 가하는 등 취약차주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서민과 금융취약 계층이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고물가 때문이다. 하지만 서민의 이자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 아래 단행된 잇단 법정금리 인하 탓이 크다. 2002년 연 66%에 달했던 법정 최고이자율은 일곱 차례나 인하를 거듭한 끝에 2021년에는 연 20%까지 낮아졌다. 그러자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 적자가 난다는 이유로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중단, 서민 대출금 창구가 막히면서 갈 곳 없는 금융 취약계층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게 됐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인 간 돈거래에 적용하는 이자제한법 위반 건수는 330건이나 됐다. 위반 건수는 2018년 301건에서 2019년 258건으로 주춤하는 듯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286건으로 다시 고개를 들더니 2021년 306건에 이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상승세를 타며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 건수도 557건으로 전년 대비 약 45%나 폭증, 불법 추심 피해도 심각한 수준까지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태가 시장 원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의해 빚어진 예고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경감해 준다는 취지로 낮춘 법정 최고금리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서민들을 사금융 판으로 내몬 것이다. ‘착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 문재인 정권 집값 급등기 때 세입자를 궁지로 몰아넣은 임대차 3법도 마찬가지였다. 주 52시간제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최근의 근로시간 규제 논란도 본질은 같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건 금융 취약계층이다. 급전을 구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불황으로 단기적 영업난에 직면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불법 사채시장에서 400%가 넘는 살인적 이자를 냈고 지금도 고금리 불법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면서 빚의 늪에 빠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취임 후 첫 민생 행보의 일환으로 서민금융 현장을 찾았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은행(SVB) 파산 사태로 금융시스템 불안정성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금융 취약계층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김 대표는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려 고율의 이자를 내면서 빚의 늪에 빠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면서 “공공 자금을 투입해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서민 금융상품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그의 주문대로 저소득·저신용 취약계층에 대한 공적 지원이 얼마나 늘어날지 의문이다. 현실을 무시한 정치권의 설익은 정책 남발로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 일이 더이상 없어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