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성 뛰어난 식품 개발, 투자가 관건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첫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법개정 추진 초기부터 쌀 초과 생산량을 전량 의무매입하도록 강제한 개정안에 반대해 거부권 행사(재의요구)가 예상됐었다. 민주당은 정부가 개정안 재의요구를 의결한 4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개정안 공포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일부 의원의 삭발을 단행했다. 대회에 나온 일부 농민들은 ‘일본 멍게는 사도 우리 쌀은 못 사냐’ 등 자극적인 내용의 피켓을 들었다. 양곡법 개정안을 놓고 농민 표를 의식한 찬성 주장과 쌀 과잉생산으로 치닫는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반대가 여야 정쟁으로 덧씌워져 갈등을 키웠다.
 
개정안은 쌀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3~5%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에 비해 5~8% 떨어질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모두 사들이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도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생산량 일부를 사들여 비축하고 있으나 남는 쌀을 모두 사들이게 한다는 것. 민주당은 정부가 나서 쌀을 사들여야 쌀값 폭락을 막고 농민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도 쌀이 남아도는 형편에 매입량을 대폭 확대하면 쌀재배 면적은 늘고 매입 비용으로 매년 1조원 이상 예산이 들어간다는 게 정부의 반대 이유다.
 
대부분 농업 경제 전문가들은 의무매입 확대가 쌀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 노력에 역행해 농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다. 농민들은 대체로 매입 확대 편에 서는 듯 보이지만 좀 더 균형 잡힌 양곡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일손이 크게 부족한 농촌 현실에서 그나마 기계화율이 높은 쌀 경작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후계농업경영인단체들은 매입 확대로 판로부담까지 없어지면 수급조절 기능이 떨어져 시중 쌀값이 더 하락할 뿐 아니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밀 콩 등 다른 작물의 국내 생산은 줄어 농업 생산의 균형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한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의무매입 확대는 결국 축산이나 어업 분야의 지원 축소를 부르고 다른 작물과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루쌀 등 가공용 쌀 생산장려와 관련 산업 육성에 나서 난제를 풀어나갈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아 가루를 낼 수 있는 가루쌀은 수입 밀가루 대체용으로 각광을 받는다. 수입 밀보다 3배가량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긴 하지만 재정 및 세제 지원과 기술 개발이 따른다면 쌀 생산과잉 부담을 해소하고 밀수입량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밥 한 공기’ 발상은 조급한 해프닝
 
쌀라면을 비롯,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쌀 가공식품이 적지 않다. 그러나 쌀 소비량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확고한 시장 점유율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베트남 쌀국수를 간판으로 내건 음식점들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우리 쌀 가공식품이 아직 특유의 맛과 조리법, 유통망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서지 못한 탓이라고 본다. 정부 차원의 재정 투입과 면세 등 지속적인 지원이 따르지 못했고 식품업계 투자와 홍보도 한계를 보였다. 국민의힘 조수진 최고위원이 농민들을 위해 ‘밥 한 공기 다 비우기’를 제안했다가 빈축을 샀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국민 호응을 받기 어려운 단순한 캠페인으로 해결될 과제가 아니다.
 
가루쌀은 밀가루에 비해 식감이 좋고 소화가 잘 된다는 평가를 받아 식품업계의 호응이 달아오르고 있다. 가루쌀 제분공장들이 가동에 나서면서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과 미듬영농조합, 대두식품 등이 빵과 과자 등 가루쌀 제품 개발에 나섰다. 또 농심과 삼양산업, 하림산업, 해태제과, 풀무원 등 대기업들이 뛰어들었다고 한다. 정부는 앞으로 4년간 가루쌀 생산량을 500배로 늘리고 농가에 제공하는 농업직불금 규모도 현행 2조원대에서 5조원 수준으로 늘려 쌀 수급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논에 가루쌀이나 콩 등을 재배하는 농민에게 ha당 100만~43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것.
 
그동안 정부가 쌀 가공식품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했다. 예산 규모와 물량 확대에 치중해 시장에 접근하는 노력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는데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관광과 연계한 맛집과 향토 음식 개발에 힘을 쏟고 음식점 거리를 만들어 상당한 성과를 내는 곳도 나오고 있다. 지자체 스스로 유명 조리사나 인기인을 내세워 매스컴과 SNS 등 홍보에 나서고 입맛에 맞는 지역 특산물 육성에 나선 성과라 할 수 있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시장특구를 만들어 쌀 가공식품의 유통과 판매를 돕고 세금을 감면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마련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단 서류상의 행정업무 처리를 벗어나 소비자 취향과 품질, 시설 개선 등 시장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늘 해온 방식대로 예산을 증액하고 재배면적과 공급을 늘려 성과를 확대하겠다는 식의 발표로는 통하지 않는다. 가루쌀도 기대를 앞세운 총론이 아니라 소비자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로 저변을 확대, 경쟁력 있는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 당장 제빵과 제과 전문가와 조리사, 행사 기획자들을 앞세워 일을 저질러 보면 정부 행정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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