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포퓰리즘 무한 경쟁에 들어간 느낌이다. 잔뜩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앞다투어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는 12일 신공항이나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사사건건 충돌하던 여야가 돈 뿌리는 일에선 물불 가리지 않고 의기투합했다. 이러한 행태는 자칫 표를 잃을 것을 우려한 정치권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로 시급히 추진해야 할 현안인 연금개혁이나 가스.전기료 인상 등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여야는 당초 SOC사업 등을 할 때 예타 조사를 면제하는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미만’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 미만’으로 상향 조정하되 과도한 재정지출을 막기 위해 재정준칙과 함께 패키지로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정준칙은 쏙 뺀 채 기준 완화 법안만 통과시켰다.

여야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 도입된 예타제도가 이후 한 번도 조정이 안 돼 그동안 무척 커진 경제 규모에 걸맞게 면제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출 급감으로 지난해 3월부터 1년 이상 무역수지가 줄곧 적자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경기 부진으로 올해 20조 원의 세수결손이 예상되고 1000조 원을 넘어선 국가 채무가 1분에 1억 원 이상씩 빠르게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함께 처리하기로 했던 재정준칙을 빼버린 채 예타 기준만 상향조정한 것은 내년 총선을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만이 아니다. 13일에는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의회에서 역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특별법에는 기존 부지를 개발해 이전 예산을 마련하는 이른바 군 공항 기부대양여 부족분의 국비 지원을 비롯해 신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예타 조사 면제, 종전부지에 대한 특별구역 지정 등의 내용이 반영돼 있다. 물론 지역민들은 이 특별법 통과를 쾌거라면서 환영하고 있지만 경제효과가 얼마나 창출될 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지역구 민원으로 우후죽순 설립된 지방 공항들은 현재 대부분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덕도 신공항에 이어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들이 모두 여야 야합으로 특별법을 통해 예타를 면제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울릉도, 새만금, 흑산도 등 6곳에서도 예타면제를 통해 공항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9일에는 정부와 여당이 아침에 결식을 하는 대학생들에 대한 아침식비 지원 대상을 모든 대학으로 확대했다. 현재 1000원 아침밥 사업에 참여한 대학은 전국 336개 중 41개에 불과하나 앞으로 희망하는 대학은 모두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
 
당정은 아침식사 습관화와 쌀 소비 진작을 위해 이 정책을 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하자 MZ세대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추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 야당도 이재명 대표가 직접 나서 이 정책의 원조가 민주당이라고 강조하면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지원대상에 전문대 200여 곳도 포함시키고 하루 두 끼로 확대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러다간 ‘대학생 무상 급식’ 주장까지 대두되지 않을 까 우려된다.
 
정부는 이밖에도 오는 5월 발표할 ‘재정비전 2050’에서 지방교부금 개혁을 제외하기로 했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를 의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자체는 현재 세수 상황에 상관없이 교부금을 지원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체 재원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지자체들이 건전재정을 외면하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처럼 선심성 정책을 내놓다 보니 다수의 재정사업이 졸속 추진되면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지 않을 까 우려된다. 선심성 정책은 공짜가 아니다. 결국에는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귀결되고 국가 신용마저 위태롭게 한다. 기재부는 각 부처가 관련 예산을 요구할 때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를 첨부하도록 해서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경제성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지역 민원 해결 차원에서 각종 SOC 사업을 추진, 재정을 축내는 걸 막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무분별한 포퓰리즘식 입법을 멈추어야 한다. 지난해 영국 정부가 재정적자 절감 대책 없이 덜컥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가 파운드화와 국채 값이 폭락하자 총리가 물러나야 했던 사례를 곱씹어봐야 한다. 국민들도 이젠 포퓰리즘의 폐해를 깊이 인식하고 표를 통해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는데 적극 나서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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