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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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 사건의 민낯...自淨의 계기 삼아야
검찰이 송영길 전 대표와 경선캠프 관계자 등의 주거지 및 외곽 후원조직 '먹고사는 문제 연구소' 사무실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특히 연구소 구성원과 송 전 대표 캠프 구성원 일부가 겹쳐, 캠프 후원금이 선거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9400만원 이상이 살포된 정황이 포착된 이상, 즉 플러스 알파(α) 자금이 확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다.
그간 검찰의 수사 포인트는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의혹을 알고도 묵인했는지 혹은 관여했는지 여부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송 전 대표의 개인 조직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그가 직접 자금을 조달했는지 까지로 수사가 확대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검찰은 송 전 대표의 측근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녹취파일에서 송 전 대표가 돈봉투를 살포한 정황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 사건 피의자로 입건된 송 전 대표는 1일 “내일(2일) 오전 검찰에 자진 출석하겠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기존 계획대로 수사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으며, (사전 조율된 일정이 아니라서) 일방적으로 온다고 해도 조사받을 수 없다“고 했다.
송 전 대표가 나름 선제적으로 정면돌파하려는 데 대해, 검찰은 압수물 분석과 관계자 조사 등 절차를 거쳐 조사하겠다며 내심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여권은 여론전 등 정치공세로 폄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후보 측으로부터 ‘돈 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가 진행되면서 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취 파일에서 돈 봉투가 오간 정황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보수 정당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정체성으로 여겨 왔던 민주당을 뒤흔들면서 당 내부의 당혹감도 더 커지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권의 여러 이슈가 부패·매표(買票) 관련 사태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성 싶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의 정기조사에 민주당 수도권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 4월 18~20일 조사에서 민주당 서울 지지율은 26%, 인천·경기는 32%로 나타났다. 약 한달 전인 3월 21~23일 조사결과와 비교하면 서울 9%포인트, 인천·경기는 6%포인트 하락했다. 2020년 총선 기준 지역구 121석이 걸려있는 수도권은 총선 최대 접전지로 ‘전대(全代) 돈봉투 리스크’가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민주당으로선 이미 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민주당 관련 사건이 여럿인데, 돈봉투 사태까지 터졌으니 엎친데 덮친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뇌물 수수 혐의 사건에서 단서를 포착한 검찰이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거액의 돈 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수사 결과에 따라 민주당 국회의원을 포함한 당 관계자 수십명이 기소될 가능성이 나온다.
법원에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연루된 재판이 이미 쌓여 있다. 이재명 당대표(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과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뇌물, 배임 혐의)와 노웅래 의원, 이 대표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 서울중앙지법이 심리 중인 공판만 6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돈 봉투 의혹 수사 결과에 따라 민주당 정치인 관련 공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뇌물 6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노웅래 의원의 공판도 임박했다. 노 의원은 지난 2020년 2월부터 12월까지 사업가로부터 사업과 인사 청탁 등의 대가와 선거 자금 명목으로 총 6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오는 19일 첫 공판이 열린다.
이런 와중에 사업가로부터 청탁 대가로 10억 원의 뇌물을 받아 지난 12일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은 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이번엔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사건에 휘말리면서 ’태풍의 눈’이 된 모양새다.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던 이 전 사무부총장과 윤관석 전 사무총장, 이성만 의원, 강래구 전 수자원공사 감사 등이 송 후보에 대한 지지표를 확보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포함한 당 관계자들에게 300만원씩 돈을 뿌리는데 관여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지난 2012년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한나라당 전당대회(2008년 7월 3일 박희태 대표 선출) ‘돈봉투 사건’ 당시 300만원의 판박이이다.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현역 의원과 당 관계자 등이 무더기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메가톤급 비리(非理)사건이다.
사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민주당과 핵심 인사들의 태도에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도덕불감증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측근 그룹인 7인회 좌장 정성호 의원은 ‘(300만원) 돈봉투는 차비나 밥값 수준이라 송영길 후보는 몰랐을 것’이라고 했고, 일부 인사는 송 전 대표를 '역시 큰 그릇', ‘물욕이 없다’ '영원한 대표', '진짜 정치인'이라며 영웅시해 듣는 귀를 의심케 할 지경이었다. 처음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의혹의 당사자인 윤관석 전 사무총장이 “비상식적인 야당탄압, 기획수사”라고 반발한 데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 돈봉투 의혹이 불거졌을 때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몇억도 아닌 고작 300만원으로 난리’라는 식으로 말했다. 개별로 전달된 50만원은 ‘한 달 점심값도 안 된다’고도 했다. 염치는 고사하고 부정부패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도 마땅한 노릇이다.
송 전 대표가 ‘돈 봉투 사건을 전혀 몰랐다’ ‘이정근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하며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한 언론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입장을 전해 구설에 올랐다.
'물극필반'이란 '모든 사물은 그 극에 도달하면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 온다'는 고사성어로, 송 전 대표가 자신은 돈봉투 살포와 무관하다고 주장한 셈. 그는 탈당했다고 하면서도 김의겸 의원을 자신의 대변인격으로 발표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사태 초반 진상규명 조직을 구성했다가 철회하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인 민주당 지도부의 대처방식도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오죽했으면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대표가 돈봉투 연루 의혹을 받는 윤관석-이성만 의원 출당 여부를 묻는 질문에 '김현아는?' '박순자는?'(둘 다 국민의힘 전 의원)이라고 반문한 데 대해 "역으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거나 우기거나 버티거나 이런 식이 벌어지면 그건 진짜 망조(亡兆)가 드는 것"이라고 질타했을까.
비명계인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파문과 관련, "이 위기를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담담하게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한편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의 169석 수적 우위를 앞세운 ‘입법 폭주’가 도를 넘은지 오래이다. 각종 포퓰리즘 법안을 거침없이 의결한데 이어 대통령 고유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도 줄줄이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한일 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해 시비를 따지겠다는 전례 없는 국정조사 요구 카드를 꺼냈는가 하면, 사안이 엄중한 이재명 대표와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은 부결하고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시켰다. 민주당은 또 4월 27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통과시켰다.
이런 가운데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부패 혐의로 제명된 전-현직 의원들을 줄줄이 복당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방문(4월 24일부터 5박 7일 일정)한 사이, 이재명 리스크와 ‘민주당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사건‘(송영길 전 대표 등 전방위 수사)의 와중에서도 대담하게 스리슬쩍 ’숙제‘를 해결한 형국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신계륜·전병헌 전 의원의 복당 허용 결과를 보고받고 이를 최종 확정했다.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민형배 의원 복당과 함께 김홍걸 의원도 복당시키로 결정했다. 지난해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위장 탈당‘한 민형배 의원은 민주당이 직접 복당을 요구하는 형태의 ‘꼼수 복당’을 하면서 내년 공천에서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됐다. 이를 두고 주요 신문은 지난 27일 “국민 우롱”, “몰염치”라는 강한 비판을 내놨다.
김 의원은 제명이 된 케이스로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해 아직 정식으로 민주당 당적을 회복하진 못한 상태다.
민주당 지도부는 윤미향 의원의 복당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재명 대표는 앞서 1심에서 윤 의원에게 벌금형이 나오자 공개적으로 윤 의원에게 동병상련을 표명하며 사과한 바 있다.
문제는 복당이 허용된 전현직 의원 대다수가 부패 혐의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그간 성범죄·부정부패 전력으로 당에서 제명·출당된 경우는 복당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가뜩이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국민적 시선이 따가운 상황에서 부패 전력자들의 복당을 무더기 허용하면서 당 안팎에서 비판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돈봉투사건 자체도 문제지만, 국민여론에 부합하는 대응이야말로 신뢰를 회복하는 시금석이다.
무릇 위기관리의 금과옥조(金科玉條)는 신속 정확한 상황 파악과 엄정한 대응이다. 냉철한 성찰을 토대로 솔직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성있는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는 진정성이다.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모두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박희태 국회의장과 경선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퇴한 데 이어, 검찰의 기소로 법원은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의장이 기소된 이른바 ‘박희태 사건’의 결말이다.
이 사건은 당시 집권여당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낀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고, 당 상징 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로 평가받는다.
민주당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우리 헌법 46조 1항의 규정이다.
모든 국회의원은 임기를 시작하기 앞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만약 청렴하게 살지 않았다면 헌법상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 서문에 '나라가 털끝 하나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고 썼다. 그리고 '지금 당장 고치고 바꾸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산은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부정부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변화를 일으키고 개혁할 수 있도록 모든 논리를 마련해 놓았지만 아무도 다산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836년 다산이 눈을 감고 1910년 마침내 나라가 망했다. 분단으로 우리는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다.
부정부패, 비리, 뇌물 이런 것들을 없애고 나라를 개혁해야 한다는 다산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다산은 18년 유배 기간 동안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그 저서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나열해 놓은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썩지 않게 만들 수 있는지 대응 방안을 마련해 놓았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 아껴 쓰는 데 있다.
공직자의 기본은 깨끗한 마음이다. 굽히지 말고 스스로를 지켜라.(이익에 유혹당하지 마라) 제 몸이 바르지 않으면 아무도 따라 주지 않는다.’
다산 선생의 가르침이 오늘따라 더욱 죽비(竹篦)가 되어 우리에게 전율을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