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 기자
bethy1027@todaykorea.co.kr
기자페이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 1심 판결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채, 또 다시 국내 주식시장에서 희대의 주가 조작 논란이 터졌다.
최근 추문이 돌고 있는 SG증권 사태로 집단 소송을 추진 중인 투자자들의 손실액은 1000억원이 넘는다. 수사당국은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를 비롯한 일부 세력이 약 3년 전부터 CFD 투자에서 통정거래를 통해 특정 종목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려왔다고 의심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추산하고 있는 이번 사태의 투자자들만 무려 1500여명에 달한다. 그 중에는 의료인, 유명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들까지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 공개된 라덕연 대표의 통화 녹취록에는 “누가 컨트롤타워인지 증명해 낼 방법은 사실 없다”며 수사 당국을 비웃는 발언까지 수두룩하게 드러나, 선량한 개인 투자자들의 기를 차게 했다.
자본시장법 제176조는 ‘자기가 매도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가격 또는 약정 수치로 타인이 그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을 매수할 것을 사전에 그 자와 서로 짠 후 매수 혹은 매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혐의가 인정되면 1년 이상 유기징역이나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의 3배 이상·5배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는다. 특경법에 따라 이득액이 5억 이상 50억 미만일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의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통해 가중 처벌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이 행태에 대한 실제 처벌 수위는 터무니없이 낮다.
앞서 2009년 말부터 약 3년간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권오수 전 회장이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원이다. ‘실패한 시세조종’이라는 재판부의 변명은 덤이었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거론되는 ‘루보사태’의 주범 김영모 제이유그룹 전 부회장은 지난 2007년 법원으로부터 8년형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2015년 만기출소한 그가 여전히 주식시장에서 떳떳하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과거 미국에서 650억달러 규모의 금융사기로 150년형을 선고받았던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의 사례와 비교할 때, 경제사범에 대한 한국의 처벌이 얼마나 관대한지 느껴진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의결된 불공정 거래 사건 총 274건 가운데 93.6%가 과징금 등 별도의 행정 조치 없이 수사기관의 고발·통보 조치만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권동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재판을 서게 하자는 여론이 강한 것도, 맥락상 백번 이해된다.
솜방망이 처벌이 누적된 결과는 참담할 따름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세 조종, 부정거래, 미공개정보 이용 등으로 인한 부당이득은 6327억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약 1.6배 급등한 규모다.
이같은 실정으로, 상식 이하의 가벼운 사법처리가 경제사범들의 범죄를 되풀이시키고 있다는 투자자들의 의구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쓴 책 ‘미하엘 콜하스’에는 “정의의 여신이 일일이 심판할 수 없을 만큼 죄악들이 한도 끝도 없이 일어나면, 정의의 여신의 보좌 앞에 베일을 칠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증식하는 경제범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과, 느슨한 전문투자자 요건 등 허점만 가득한 규제가 낳은 결과에 대해 당국이 경각심을 갖고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SG증권 사태의 진상을 다루는 검찰과 금감원의 촘촘한 수사망이, 한국을 사기공화국으로 침몰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변수가 될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이슈가 될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 어느 때보다 수사당국의 냉정한 판단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