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코로나 19 비상사태가 종료됨에 따라 비대면 진료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오는 6월부터 코로나 위기 경보가 ‘심각’에서 ‘경계’로 낮아져 비대면 진료가 코로나 19 유행기 이전처럼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비대면 진료가 불법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병원 감염 등이 우려되자 감염병 위기 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유지하는 동안에한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비대면 진료는 유·무선 전화나 화상통화를 통해 의사의 원격진료를 받는 서비스이다. ‘환자가 전화나 영상으로 진료를 받으면 의사의 처방전은 동네 약국으로 가고 약은 택배업체에 의해 환자 집으로 배달된다.
 
역대 정부 상당수가 비대면 진료의 합법화를 추진했지만 의료계 등의 반대로 합의를 이루지 못해 무산됐다. 산업계는 원격진료를 허용하면 ‘혁신의 길’이 담보된다고 했지만 의료계는 국민 건강에 심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안에 영원히 갇혀 있을 것 같던 원격진료는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 병원 감염이 우려되자 반대하던 의료계도 원격진료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2020년 2월 의료법을 개정, 비대면 진료를 조건부로 합법화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정부가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추진 중이고, 국회에도 5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제도화는 국회에서 의료법이 개정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의사, 약사단체 등의 반대로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는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이 늦어질 경우,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격오지 거주자와 노인, 장애인등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 비대면 진료를 유지할 계획이다.
 
비대면 진료의 쟁점은 허용 범위와 진료 대상 등 크게 두 가지다. 허용 범위를 재진으로 한정할 것인지와 진료 대상을 만성 질환으로 한정할 것인지 등이다. 의사와 약사단체는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데 회의적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환자의 안전성을 등한시할 수 없다면서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대면 진료는 기본적인 진단인 청진·촉진·문진 중 문진만 가능해 초진 환자의 경우, 진단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의약품의 남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의료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초진을 비대면 진료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와 다를 바 없다면서 초진 반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의료서비스의 퇴보라고 주장한다. 물론 비대면 진료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들은 비대면 진료에 초진을 포함시켜야 한다는데 찬성한다.
 
비대면 진료를 놓고 합의 도출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숨겨진 이유는 의료산업의 향후 주도권이 이번 합의에 달려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에서 초진이 허용될 경우 병원을 고르는 선택의 주도권이 플랫폼 기업에 넘어가 의료산업 자체가 플랫폼 기업에 종속될 것을 우려한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가맹하는 병·의원이 많아질수록 플랫폼의 시장 장악력이 커져 갑을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광고료를 더 많이 낸 병·의원부터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것이 공공 서비스인 의료산업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진만 허용할 경우 소비자의 병·의원 선택이 대부분 ‘초진한 병·의원’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주도권을 쥐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원격 비대면 진료는 환자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가 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비대면 진료가 합법화되면 지방 환자가 수도권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 병원을 찾아야 하는 불편과 수고를 덜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2월부터 비대면 진료가 3년 넘게 시행되면서 환자들이 적잖은 편익을 누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행 후 올해 1월31일까지 무려 1379만 명이 전국 2만5697개 의료기관에서 3661만 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단순 실수 외에 큰 의료 사고는 없었다. 특히 복지부 설문 조사에서 비대면 진료를 다시 이용할 의향은 87.9%, 만족도는 77.8%나 됐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대면 진료비 증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코로나19 기간에 비대면 진료 수가는 일반 진료보다 30%가 높다. 플랫폼 스타트업이 새로 끼어드는 것도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의료계는 향후 수가를 150~200%로 올려 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대면 진료 자체를 금지한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국민의 건강과 편익이다. 대다수 선진국이 허용하는 비대면 진료를 우리나라만 불허할 이유가 없다. 이익단체들의 부작용 우려는 협의 과정을 통해 최소화하면 된다. 단계적으로 허용 범위를 넓혀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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