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견·고립으로 小貪大失...반면교사 삼아야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지난 6일(현지 시각) 75세의 찰스 3세가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역사적인 대관식(戴冠式)을 가짐으로써 세자 책봉 65년만에 영국의 군주로 공식 등극했다.

사흘간 진행된 이번 대관식 행사는 최소 1억파운드(한화 1,670억원)를 들여 나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버킹엄궁 측은 이번 대관식을 통해 영국 경제에 약 10억 파운드(약 1조 6700억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고 옹호했다.

이날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영국 왕실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찰스 국왕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엘리자베스 2세(1926~2022)의 존재감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4월 말 영국의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 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인의 24%만이 대관식 행사에 관심을 보였다. 영국이 100년 뒤에도 군주제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응답한 이가 45%에 머물렀다.

그러니 새 국왕의 화려한 대관식을 두고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분위기라는 소식을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일각에선 영국의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호화로운 대관식을 치르는데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 9월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는 대영제국의 쇠락(衰落) 속에서도 자제력과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던 ‘영국정신‘의 상징이었다.

생전 80%대의 지지율을 보였던 ’지존(至尊)‘ 엘리자베스 2세보다는 한참 못미치지만 찰스 3세의 지지율도 60%를 기록, 보수적인 영국민이 그래도 아직은 군주제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찰스 3세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수북이 쌓여있다. 영광과 환희의 순간 보다는 고난과 인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영국 내에서 갈수록 커지는 ’군주제 폐지‘ 여론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향후 찰스 3세의 입지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왕실 현대화’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영연방 국가들의 이탈 움직임도 간단하지 않다. 제국주의 과거를 청산하고 영연방 결속을 다져야 하지만, 공화제 전환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대영제국(大英帝國).

한때 54개 나라를 무릎꿇리며 인류 거주지의 4분의 1(3,670만㎢, 한반도의 약 180배)과 세계 인구의 4분의 1(1920년 통계 당시 4억 6,000만)을 거느렸다.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엄청난 생산성 증대로 많은 나라를 식민지배하고 지구상 모든 대륙에 식민지가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그런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이 위기의 길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2023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전망 자료를 보면, 세계 평균은 2.9% 성장, 유로국가는 0.7% 성장을 전망했는데, 영국은 –0.6%로 역성장 하는 걸로 나타났다.

실제 영국 사람의 삶의 모습은 고단하기 짝이 없는 상황.

국민 6명 중 한 명은 식비 부담 때문에 끼니를 거르고, 세 명 중 한 명의 아동이 빈곤선 아래에 있으며, 정규직 교사가 무료급식소를 찾는 현실이다. 유니세프(unicef, 유엔아동기금)의 지원을 받을 정도라니 쉬 믿어지지 않는다.

영국 근로자들의 생활수준은 올해 다른 선진국보다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인 것으로 블룸버그가 지난 1~5일 금융전문가와 개인투자자 6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이 매체의 여론조사(MLIV Pulse)에 따르면, 영국은 물가상승률이 임금인상 속도를 웃도는 정도가 주요 7개국(G7)에서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라는 응답이 조사대상자 중 58.5%로 가장 많았는데, 두번째 이탈리아(14.7%)에 비해 큰 차이를 보였다.

이 조사 결과, 영국민이 위기감을 느끼고 그중 상당수가 파업에 들어가는 상황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통계청(ONS)에 따르면 물가변동 조정 이후 실질임금은 3% 남짓 감소했다.

광열비, 식량잡화 같은 필수품은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10.1%)보다 가파르게 올라 할인마트와 무료급식센터 등 푸드뱅크 이용이 부쩍 늘었고, 노동쟁의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실제 최근 영국 전역에서 지난 2011년 이후 최대 규모의 파업이 일어나 학교, 교통 등의 불편이 초래되고 있다. 영국 노동조합회의는 교사, 교직원, 공무원, 철도 기관사, 버스 운전사 등 약 50만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영국 중앙은행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영국민들이 “더 가난한 상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해, 미래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

영국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낸 사건은 국내총생산(GDP)에서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에 역전당한 것이 대표적. 지난 4월(추정치) 인도가 3조7368억 달러로 영국의 3조1589억 달러를 추월한 것.

바로 이웃한 과거 식민지 아일랜드는 2003년 영국의 1인당 GDP를 추월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적극적인 외자 유치와 금융업의 활성화, 안정적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적 리더십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2007년 아일랜드의 1인당 명목 GDP는 59,997달러로 영국의 46,118 달러보다 1만달러 가량 높았다.

최근 영국이 급격한 국운쇠퇴기를 맞이한 주된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지난 2020년의 유럽연합(EU) 탈출,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Britain+Exit)’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죽하면 영국언론들이 ‘브렉시트의 저주’ ‘영국병(英國病)의 귀환’이라고 대서특필할까.

실제 브렉시트 결과, 동유럽 등지에서 온 저숙련 합법 노동자 33만명이 영국을 벗어나 유럽대륙으로 떠났고, 해외자본과 공장, 외국 대기업의 유럽본부 등이 대거 영국을 탈출했다.

인적 물적 자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2016년 6월 영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묻는 투표였다. 탈퇴안이 가결되고 2020년 1월 영국은 끝내 유럽연합과 헤어졌다.

당시 브렉시트를 주도한 이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영국은 수십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을 재발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의 지표는 영국의 바람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9.6% 폭등한데 이어 지난 3월에도 8.9% 상승하는 등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지난 4월 물가상승률은 10.1%로 미국 5%, 독일 7.8%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는 우리나라의 3.7%에 견줘봐도 엄청나다.

영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작년 12월 0.5% 줄었고, 지난 2월에는 0%를 기록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시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기 침체 국면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것.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로 2030년까지 자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EU에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30년에는 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금융시장 중심지이던 런던의 위상은 변방으로 전락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주식시장은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으로, 채권시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빠르게 이동하는 추세다.

유럽의 금융 수도로 불리던 런던이 ‘브렉시트’ 여파로 쇠락한 뒤 프랑스 파리가 새로운 금융 허브(hub)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앞다퉈 런던에 있던 유럽 본부를 파리로 이전하고 있다. 프랑스는 브렉시트를 계기로 2019년 런던에 있던 EU 은행위원회를 파리에 유치했다. 유럽증권시장국(ESMA), 유럽은행감독청(EBA) 등에 이어 유럽 주요 금융당국이 모두 파리에 본사를 둔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프랑스 증시의 시가총액(2조 8230억달러)이 19년 만에 처음으로 영국 증시(2조 8210억달러)를 앞섰다. 작년 9월 리즈 트러스 내각이 발표한 감세안의 여파로 영국 증시가 급락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37년 만에 최저치를 찍은 여파다.

영국이 실질적으로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지 2년이 지난 뒤 ‘브레그렛(bregret)’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brexit)를 후회(regret)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의 조사에 따르면 “브렉시트 결정이 잘못됐다”는 응답자는 56%로, ‘옳았다’는 응답(32%)을 크게 앞질렀다.

브렉시트의 후과(後果)는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브렉시트 탈퇴 후 찾아온 경제 위기는 곧 집권당의 위기로 이어졌다. 브렉시트 실행 후 2년여 만에 영국은 세번째 총리를 맞았으며 투표와 협상과정까지 7년 동안 총리 4명이 사임하고 5번째로 사상 처음으로 인도계 리시 수낙 총리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당초 브렉시트에 부정적이었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경제적 이유·주민 정체성 등을 구실로 분리 독립을 추진중이서 연합왕국 영국(Great Britain, 잉글랜드 웨일스 포함)의 입장에서 이래저래 아주 골머리를 앓게 됐다. 약해진 영국의 위상을 틈타 ‘반기’·를 든 형국이다. 여기에 영연방 국가의 이탈과 분열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2백 년 전 영국으로부터 치욕을 당했던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의 총리는 발 빠르게 움직여 해외기업들을 받아들였다.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아일랜드의 GDP가 영국을 추월했다.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미래를 보는 힘이다. 신속하고도 올바른 결정이 중요하다.

2016년 6월, EU탈퇴 여부를 놓고 벌인 국민투표는 찬성 51.9% 박빙의 승부였다. 당시 찬반 여론은 팽팽했으며 양측간 공방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캠페인 과정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조 콕스 하원의원(노동당)이 총격 테러로 사망했다. 주로 탈퇴 찬성파인 저소득층 노인층 농촌지역과, 잔류 지지세가 많은 고학력 젊은층 도시지역 유권자들이 치열하게 격돌한 것. 당시 총리 등 많은 정치인들은 진실로 나라의 장래와 국리민복 보다 브렉시트를 매개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더 열중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브렉시트 전후 사정을 반추(反芻)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유럽연합 국가(28개국)들은 정치· 경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회원국들끼리 자유롭게 무역을 해왔는데, 영국은 여기에서 탈퇴하는 ‘강수(强手)’를 두었다.

브렉시트 이후로 영국은 EU회원국들과 교역할 때 까다롭고 복잡한 통관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통관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쌓이게 되니 영국 기업과 거래하던 EU 회원국들은 EU 안에서 대체재를 찾게 됐다. 그러면서 영국과의 무역은 계속 감소하고, 영국 내에 투자가 축소되면서 경제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다. 해외기업의 유입이 어려워진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영국은 영어를 쓰고, 유럽 시장 접근이 용이해서 ‘국제금융의 중심지(허브)’로 일컬어졌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로 더이상 영국 런던에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브렉시트 전만 해도 영국은 부유한 나라였기 때문에 EU(유럽연합)에 한 해 108억 파운드(한화 약 17조 1400원을)를 분담금으로 내고 있었다.

영국은 이것이 억울했는지 막대한 분담금으로 다른 나라를 도와줄 바에는 그 돈으로 자국의 교육과 신산업을 육성, 의료복지에 쓴다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분담금 중에는 영국으로 들어오는 돈도 상당히 많았는데 영국은 그 부분을 간과했던 것.

그 결과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연간 GDP 손실액은 1,000억 파운드(한화 17조 1,4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과거 EU분담금의 9배에 해당한다. 혹 떼려다 혹 붙인,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또한 영국인들은 ‘난민(難民) 정책’ 때문에 자국민들이 굉장히 손해를 본다는 피해 의식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피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더 큰 문제는 영국의 노동시장을 지탱하고 있던 동유럽에서 온 합법적 이민자들까지도 영국을 이탈하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영국의 고령화에 노동자들까지 이탈하면서 노동력 부족현상은 ‘물류대란’ 등 영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브렉시트 이후, 독립적으로 살면 잘 살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았다. 그러자 내부 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EU탈퇴 이후에 스스로 자생이 가능하다고 맹신하고 과거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영국병’에 걸려 있었다. 영국의 파멸은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금융중심국가라 제조업의 기반이 허술한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자동차회사 로버, 롤스로이스 등이 독일에 넘어간 사례가 대표적.) 여기에 노동력의 부족으로 제조업이 더욱 부실해졌다.

영국국채와 파운드의 급격한 하락 등 어두운 경제 전망이 물가상승과 정치적인 혼란까지 불러왔다.

영국의 최근 상황을 보니 아차 하는 순간에, 그리고 잘못된 선택 한번으로 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우리나라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지금 복합위기(複合危機)에 직면해 있다.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갈등이 위험 수위에 달했고, 무역수지 적자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으며,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명이다. 출산율 저하와 노동력 부족 또한 심각하다. 한국금융연구원(KIF)이 지난 10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1.3%로 하향 수정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뭣보다 정치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영국의 최근 상황은 실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개방에 역행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갈라파고스 함정’은 고통이다. 그것도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자업자득임에랴.

섬나라의 지정학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개방과 포용을 기치로 과거 대영제국의 신화를 창조했던 그 영국이 헛발질을 하다니...

지난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언론사 특파원을 했던 필자로서는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영국은 역동적이었고,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상대적으로 팍팍하지 않았다.

“성(城)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말은 역사의 진리다.

사통팔달, 교통로를 구축해 ‘팍스 로마나’를 구현한 고대 로마가 최장수 제국의 영화를 누린 반면에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의 진(秦)나라는 전국(戰國)을 평정하고도 불과 15년 단명제국에 그쳤다. 외부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개방적 사고의 중요성과 함께 교역·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교훈적 사례다.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의 깨인 의식이 뭣보다 중요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