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인공지능(AI) 로봇이 인간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미국의 공상과학(SF)영화 터미네이터 1편이 개봉된 지 벌써 40년이 다 됐다. 당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AI가 언젠가는 인간을 대신할 거란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광경들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현실화하지 않을 것으로 다들 믿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일(현지시간)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마케팅과 소셜미디어 콘텐트 분야 일자리를 이미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챗GPT가 선 보인지 불과 반년만이다. WP는 글쓰기 등 창의적인 업무에서 AI가 인간의 수준까지 따라왔다고 보긴 어렵지만 많은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AI를 도입, 약간의 품질 저하를 감수하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인사관리 컨설팅 회사인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CG&C)는 미국 기업들이 지난 5월에 AI 때문에 감원했다고 밝힌 근로자 수가 3900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기업이 인력 감축 이유로 AI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는 AI로 인한 인력 감축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최근의 AI 발(發) 실직은 창조적 분야 일자리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 산업혁명 시절에는 기계가 저임금·단순 노동을 대체하면서 블루 칼러를 겨냥했지만 생성형 AI는 화이트칼라 직종을 먹잇감으로 하고 있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가 아닌 고학력, 고소득층의 전문직에서 'AI 대체 현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45개국 803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미래 직업 보고서 2023’을 통해 2027년까지 전 세계에서 83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는 반면에 6900만 개가 새로 창출돼 140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 보고서는 일자리 감소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직군으로 은행원과 티켓 판매원, 데이터 입력 사무원 같은 기록 관리직과 행정직을 꼽았다.
 
또한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전 세계 약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감소시켜 세계 노동자의 18%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행정과 법률 분야의 충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행정직 46%, 법률직 44%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건설업 등 육체노동자가 받는 충격은 비교적 작을 것으로 내다봤다.
 
생성형 AI는 데이터 분석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작물까지 제작한다. 예컨대 여러 화가의 화풍이나 작곡가의 음악 패턴을 습득한 뒤 이를 재창조해 다른 그림이나 음악을 만든다. 홍보 등에 쓰일 문구를 작성하거나, 외국어로 된 문서를 번역하고, 복잡한 판결문 등도 분석한다. 작업 속도도 인간보다 빨라 이런 작업을 하는데 굳이 사람을 거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챗GPT를 훨씬 능가하는 초인적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과거 산업혁명을 뛰어넘을 만큼 인류 사회를 온통 뒤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AI 기반 대화형 챗봇 '챗GPT'가 공개된 이후 세계인은 AI를 일상의 필수 서비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젠 AI가 실직을 유발할 정도로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 AI와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금까지는 글을 읽고 쓰거나 컴퓨터와 디지털 환경을 이용하는 능력이 중요시됐지만 이젠 AI 리터러시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됐다.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지가 개인과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최근 AI가 훌륭한 답변을 하도록 질문을 잘 유도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분야가 생겨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AI 문맹(文盲)은 개인간 빈부 격차는 물론 문명 격차까지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AI는 혁신과 발전의 잠재력이 매우 크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면도 우려된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한 AI 시스템 ‘스카이넷’은 자신의 발전을 두려워한 인간들이 스카이넷을 멈추려고 하자 되레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한다. 얼마 전 미국 국방부 청사 안에서 발생한 화재처럼 보여진 폭발 사고 사진은 조작된 AI 기술의 결과물로 판명이 됐지만 한 동안 미국 증시를 뒤흔들어 놓았다. 또한 AI가 인간의 명령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군사작전을 벌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가 발표돼 공포가 조성됐으나 실제로는 이런 실험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례들은 AI를 잘못 제작하거나 디자인하면 이런 무책임하고 위험한 AI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현재로서는 AI가 원자력처럼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일부 이용자들은 벌써부터 AI를 나쁜 방향으로 사용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찾고 있어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올 가을에 사상 처음으로 AI 안전에 대한 세계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한다. 현재 AI 분야 세계 7위인 한국도 당연히 이 회의에 참석해야 할 것이다. 과도한 규제로 AI의 혁신과 발전을 저해해서는 안 되겠지만 AI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적절한 규제와 안전장치가 강구되기를 기대한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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