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물가폭등 재연이 우려된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 근 2년만에 2%대로 내려오면서 안정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 유가와 곡물가가 오름세로 돌아서 물가가 다시 폭등하지 않을 까 우려된다. 시민들의 얼굴에 또다시 수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소비자물가 지표는 지난해 7월 6.3% 상승, 정점을 찍은 뒤 2%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다.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고공 행진 중이고 한번 오른 물가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점심값만 해도 한 끼에 수천 원씩 뛰어 이젠 1만 원 이하짜리를 찾기가 어렵게 됐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소비자물가 지표와는 달리 등락 폭이 크지 않아 보통 1∼2%에 머무르는 근원물가는 올들어 7월까지 4.5%나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크게 상승했다. 근원물가는 날씨나 국제 유가 등 일시적 요인에 따른 물가 변동분을 제외한 물가 지수로 장기적 추세를 파악하기 위한 지표다.
 
근원물가지수가 높다는 것은 물가의 장기적인 기저 흐름이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최근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원유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름세로 반전된 데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여건이 여전히 불안하고 추석 명절까지 다가오고 있으니 물가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밥상물가다. 집중호우에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시금치·상추 등 일부 채소 가격이 치솟고 닭고기, 과일 등도 급등세를 보이며 서민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8월부터는 지난해 최고 수준으로 올랐던 소비자물가의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앞으로 수차례에 걸쳐 태풍이 한반도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돼 경제 부담이 무척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와중에 밀과 옥수수 등 국제 곡물과 원유가가 심상치 않다. 세계 3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에도 안전하게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 협정인 흑해곡물협정이 러시아의 일방적인 파기 선언으로 종료됐다. 이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항이 러시아의 주된 공격 목표가 됐다. 그러자 우크라도 무인 잠수정을 통해 석유류와 곡물을 주로 수출하는 러시아의 노보로시스크 항구를 보복 공격하고 나서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그러니 국제 원유와 곡물가가 상승세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흑해곡물협정 종료로 지난해 최고치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국제 곡물 가격이 10~1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도 곡물, 과일, 채소 작황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세계 곡물 가격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는 쌀 작황 부진과 그로 인한 가격 폭등을 이유로 지난 7월 ‘바스마티’ 품종을 제외한 백미 수출을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베트남과 태국 쌀 수출 가격이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두 나라는 인도와 더불어 세계 3대 쌀 수출국이다. 중국도 최근 태풍으로 주요 곡창지대가 물에 잠기면서 가뜩이나 위태로운 국제식량 가격에 기름을 끼얹을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억눌러 온 전기.가스 요금을 비롯해 각종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10월부터는 원유 가격이 ℓ당 88원 인상돼 우유 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는 ‘밀크플레이션’도 우려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8월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높아져 연말까지 3% 안팎에서 등락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인플레이션은 통상 경기가 회복되는 국면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작금의 인플레는 경기호조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단가가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인플레이다. 지난해 물가 급등도 주로 수입물가 상승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 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특히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그런 나라에서 국제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우크라 전쟁으로 교역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니 고작 1.4%로 전망되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지고 수입비용 상승으로 물가는 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지 않을 까 우려된다.
 
민생 안정의 핵심은 물가다. 특히 서민들에게는 밥상물가가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어 치명적이다. 그래서 정부는 식품업체들을 압박, 7월부터 다소나마 라면 값을 인하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불과 두 달도 안 돼 국제곡물가가 다시 오르고 있으니 고민이 크다. 더구나 세수 펑크로 구멍 난 나라 살림을 개선하기 위해 내달부터 유류세 인하 조치를 거두어들이려 했으나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게다가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인플레 억제 수단인 기준금리도 많이 올라있어 경기 둔화를 감안, 더 이상 올리기도 쉽지 않다. 이래저래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물가는 관리 수단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통제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의 기능을 저해, 왜곡을 부른다. 정부로서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감안. 다양한 대책들을 끊임없이 도출해 내야 하겠지만 국제원자재 값이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집값과 전세가마저 오름세로 반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소득이 적은 서민들로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이외에 달리 길이 보이지 않는다. 전세나 월세가 싼 곳으로 이주하거나 미래를 담보하는 보험과 적금 등을 깨는 방법 이외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