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접국들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대사관 앞 등 도처에서 방류 반대 집회가 열렸다. 특히 중국은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10개 지역으로 한정해 오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대상 지역을 즉각 일본 전역으로 확대하고 나섰다.
 
오염수 해양 방류 개시는 수년 동안 진행해 온 국내외 반대 여론 설득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일본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상 보관이 어렵고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 등으로 해양 방류를 개시한 일본 정부는 현재 133만t의 오염수를 약 900여 개의 탱크에 보관 중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제거를 하지 못해 원전부지에 그대로 방치돼 있는 사용후 핵연료에 지하수와 빗물이 유입되면서 하루 100t씩의 오염수가 새로이 생성되고 있다.
 
방사성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인류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핵실험이나 원전 가동으로 인해 발생한 방사성 물질의 간헐적인 해상 방류는 있었지만 사고로 용광로가 녹아내려 생긴 방사성 물질의 장기간에 걸친 대량 해상 방류는 처음 있는 일이다. 따라서 안전을 확실히 담보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바다로 방류된 오염수는 다시 회수할 수 없으며 미래세대까지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일본의 이번 방류가 지구촌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2011년도부터 다핵종제거설비(ALPS. 알프스))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까지 2년간은 방사능 농도가 무척 높은 오염수가 무방비로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런데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해역에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으로 조사돼 이번 방류가 안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과학자들의 견해다. 특히 ALPS로 정화가 되지 않는 삼중수소는 농도를 기준치의 40분의 1 미만으로 희석해 방류하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안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방류 결과는 앞으로 서서히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예상대로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로 인한 파장과 책임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계획대로 즉시 방출 중단 등 적절한 대응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30년 이상 긴 시간 동안 오염수가 바다에 방류되면서 정화장치 등이 계획대로 오작동 없이 가동될 것이라 속단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방류의 모든 과정이 계획대로 이행되는지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방류 현장에 한국 전문가를 상주시킬 것을 요구했는데도 일본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은 점은 무척 유감스럽다. 일본은 원전사고 직후 노심이 녹은 사실을 한참 후에야 발표했고 ALPS 초기 가동 때 고장이 빈발했던 사실을 숨긴 적이 있어 더욱 그렇다.

우리 정부는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의 브리핑을 통해 “오염수 방류에 계획상의 과학적·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차장은 이어 “우리 정부가 내린 판단의 대상은 일본 측의 방류 계획”이라면서 “실제 방류가 조금이라도 계획과 다르게 진행된다면, 우리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해 일본 측에 즉각 방류 중단을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 하더라도 수산물 소비 급감으로 수산업 종사자들이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일본 교도통신이 지난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염수 방류 시 소문(풍평) 피해가 발생할 것"이란 일본 국민들의 응답이 무려 88.1%에 달했다.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도 “과학적 안전과 사회적 안심은 다르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과 한국 어업 피해는 이미 시작됐다.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자 지난 7월 중국의 일본산 생선 수입액이 6월보다 53%나 급감했다. 이로 인해 일본 내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어민 등 수산업 종사자 대부분은 오염수 방출이 수산물에 끼칠 영향이 극히 미미하다는 국내 과학자 다수의 견해를 믿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수산물 기피로 벌써부터 가격이 폭락하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오염수 방류 후 수산물 가격이 급락하는 등 피해가 발생하면 정부가 마련한 총 800억 엔(약 7,400억 원)의 기금으로 피해를 보상하고 “필요한 예산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장기적으로 책임지고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에 대처할 대책은 없다. 원인 제공자인 일본이 한국 어민들에게도 피해보상을 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등 인접국들이 일본의 방류 때문에 방사능 검사 건수를 늘리는 등 관리체계 강화로 쓰지 않아도 될 막대한 비용을 자체 부담하고 있는데도 이러니 일본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앞으로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 논란과 함께 수산물 소비 급감으로 인한 수산업 종사자들의 대규모 생존 투쟁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공방도 치열해질 것이다. 특히 여야 간의 이전투구식 소모전은 갈수록 격화할 것으로 예견돼 걱정이 앞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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