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국가 통계가 왜곡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잘못 만들어진 통계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하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또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의 평가를 그르쳐 수정 보완 폐기할 기회를 막는다. 그로 인한 피해는 모두 국민이 안게 된다.
 
지난 수년간 왜곡된 부동산 통계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정부 대책은 거꾸로 가는 바람에 국민들은 고통을 겪었다.
 
고용 및 소득 관련 통계를 조작 또는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최저임금 정책 및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강행하는 바람에 수많은 자영업자와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져 고통을 받았던 경험이 생생하다.
 
이런 일이 길어지면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신뢰를 추락시켜,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와 아르헨티나 등은 수년 전 통계 왜곡을 일삼다가 국가신용 추락을 감내하지 못하고 국가 부도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겪었다.
 
통계란 객관적이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정치성이 개입해선 안된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수치여야 한다.

정책 설계의 기초가 되고, 정책 효과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인 통계 생산에 정치색이 끼어들면 정책은 엉망이 되고 국민은 그로 인한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객관 정직 정치적 중립이 통계의 생명

최근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통계 조작’이라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실 그간 수없이 지적되어 온 내용이 대부분이고, 통계 생산에 정부가 개입한 과정이 좀 더 상세히 밝혀지는 수준이긴 하다.
 
필자는 이 칼럼에서 네 차례나 ‘통계 중립의 엄중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중 세 번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한번은 정권이 바뀐 뒤에 썼다.

그러니까 정부가 바뀌었다고 뒷북 치는 지적은 아님을 밝힌다. 아울러 이처럼 자주 올바른 통계 생산을 주문하는 것은 통계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일이어서 임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 시절 내내 통계 왜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으나 당국은 모른 체 했다.

‘선택적 통계 인용’ ‘통계 물타기’ ‘통계 마사지’ ‘코드 통계’ ‘맞춤 통계’ ‘보은 통계’ ‘통계 분식’ 등등의 용어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했다.
 
통계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상부 지시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변명도 하지만 전문가들로서는 무척 모멸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청와대)말을 고분 고분 들었던 편은 아니다” “통계가 정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려 했다” 임명된 지 13개월 만에 경질된 황수경 통계청장이 이임하면서 남긴 말이다.
 
“정책에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통계조사 응답자가 ‘언제까지 일할지 모르니 비정규직’이라고 답했기 때문이지 정책 잘못으로 비정규직이 늘어난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비정규직 축소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은 크게 줄고 비정규직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통계 수치를 해석하는 후임 강신욱 통계청장의 설명(궤변)이었다.
 
‘좋은 통계로 보답’이 남긴교훈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좋은 통계’로구나 하는 말이 나왔다. 강 청장의 말은 통계사(史)에 길이 남을 명언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감사원이 발표한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실태’를 요약하면 부동산 가격 통계를 94차례 이상 조작했다, 소득 고용 통계도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 산출 방식을 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정책의 실패를 감추는 데 쓰였다는 것이다.
 
물론 전 정권 관계자들은 이같은 발표를 “조작 감사”라고 반박한다. 감사원이 관여자들을 통계법 위반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으니 수사 결과를 지켜 볼 일이다.
 
조작이 가장 심했던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통계 관련, 부당한 통계 조작 지시에 시달려온 부동산원 노조원들이 경찰에 이런 사실을 제보했었다는 사실이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충격적인 사실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관련된 고용 소득 통계의 왜곡에는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가 직접 관여했다는 것이 감사원 조사 결과다.
 
정책 설계 책임자가 정책 실패를 감추고 통계를 조작해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를 한 셈이다.

대통령이 이같은 지시를 했을 리는 만무하고, 참모들의 농간에 넘어간 것으로볼 수있다.
 
후진국 형 통계 논란에 종지부를 ...
 
다만 통계 왜곡이나 정책 실패가 끊임없이 제기됐음에도 참모들 말만 믿고 정책수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후진국에서나 있을 통계 조작 논란을 벌일 것인가. 이번 기회에 통계의 엄정 중립을 보장할 제도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 시절의 잘못이 있었다면 엄중 처벌하고, 만천하에 실태를 낱낱이 공개하여 조작 참여자는 낯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장치를 강화하는 일이다. 현행 통계법에도 여러 장치가 있지만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을 내각의 지휘를 받지 않는 의회 산하 독립기구로 만든다든지, 중앙은행 못지않게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잘업도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통계청장의 임기 보장 등을 통한 정권의 개입 차단 등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를 참조해서 다시는 ‘후진국형 통계 논란’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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