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기준에 징수 과중, 반발 확산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2006년 도입 당시부터 재산권 침해 논란을 빚었던 재건축 부담금 제도가 최근 드러난 집값 통계 조작으로 사실상 존립 근거를 잃었다. 아파트를 재건축할 경우 사업 종료 시의 공시가격에서 재건축 시점의 공시가와 공사비 등을 제외한 미실현 이익을 산정, 예상 금액의 최대 50%까지 미리 환수하는 과도한 장치라서 그동안 주민과 건설사들의 반발이 심했다. 노무현 정부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며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를 근거로 차액을 세금과 다름없는 부담금으로 물렸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징벌적 환수가 주민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논쟁을 일으켰고 경기 침체와 맞물려 재건축을 포기하는 단지가 속출했다. 2012년 법률 개정으로 일몰기한을 두어 5년간 시행을 중단했다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대책의 하나로 제도를 부활했다. 문 정부는 오로지 집값을 누르겠다는 단순 무모한 정책으로 일관, 재건축을 통한 아파트 공급을 제약하는 부작용을 불렀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집값 통계 조작으로 부과 기준선을 낮게 잡아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들에게 1조원 가까이 부담금을 더 물도록 통보했다는 사실이다. 애초 부담금을 더 물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해도 부동산 거래가 안정을 찾아간다는 방향으로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억지로 낮추다 보니 부과 기준선을 왜곡하게 됐다. 그 결과 재건축 단지의 아파트값 예상 상승분이 부동산원이 집계한 주변 아파트 상승률에 비해 현저하게 높게 나타나 부담금이 대폭 올랐다.
 
부동산원이 최근 유경준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재건축 부담금 예정액 검증보고서’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부담금 예정액을 통보받은 전국 51개 단지 가운데 통계 조작의 여파로 부담금을 더 물어야 하는 가구가 24개 단지 1만4000가구에 이른다. 부동산원 통계를 바탕으로 전체 단지에 통보된 총 부담금은 1조8600억원인데 비해 KB국민은행 통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조원 가량 적은 9060억원이다. 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정을 호도하기 위해 통계를 조작 또는 왜곡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KB국민은행 통계가 부동산원보다 실거래가에 훨씬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는 가구당 3억4700만원 부담금을 통보받았는데 KB국민은행 시세를 적용하면 한 푼 안 물어도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주변 아파트의 집값 상승률이 부동산원 통계로는 평균 44.4%에 그쳤으나 KB국민은행 시세로 133.8%나 올라 ‘정상적인 가격 상승분’ 즉 주변 지역 평균 상승분을 제외하고 나면 부담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다. 강남구만 그런 게 아니라 영등포구나 강서구 강북구 등 다른 자치구에도 부담금을 아예 물지 않거나 대폭 낮아지는 아파트가 적지 않다.
 
존립 근거 잃은 제도, 없애는 게 당연
 
정부가 통보한 예정액을 근거로 부담금 징수를 강행할 경우 단지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그동안 재건축을 추진하기 위해 낡은 아파트에서 10년, 20년 넘게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왔는데 엉터리 시세를 근거로 통보한 부담금을 내라고 하면 받아들일 주민이 없다. 분통이 터져 시위에 나서거나 소송을 벌일 게 뻔하다. 국토교통부도 부담금 제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한 입장이라고 한다. 이미 산출 근거에 신뢰를 잃은 세금이나 부담금은 과감하게 혁파하는 게 정답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한남연립재건축조합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합헌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아파트를 팔기도 전에 초과 이익을 산정해 재건축이 완료되는 시점에 부과하는 부담금은 미실현 이익에 대한 세금과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학계의 위헌 논란이 여전하다. 시세가 오른다 해도 양도소득세나 보유세와 겹쳐 주민들에게 이중과세와 다를 바 없는 과중한 부담을 안긴다. 정부와 여당은 재건축 부담금을 과도한 규제로 인식해 조합원 1인당 부담금 면제 기준을 현행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고 초과이익 산정 기준 구간도 확대해 부담금을 낮추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마저 야당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진전이 없는 상태다. 재건축정비사업조합연대는 법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여러 차례 벌였다.
 
조작된 통계로 작성된 부담금 예정액이 드러나자 주민과 조합들은 이참에 근거와 신뢰를 잃은 제도를 폐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인건비와 자재 등 공사비가 치솟아 추가로 사업 분담금을 물어야 할 형편에 과중한 부담금은 재건축을 무산시키는 폭탄과 다름없다는 반발이다. 야당과 협의를 거치면서 땜질식 개정안을 내놓을 게 아니라 정책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집값 안정과 사회적 형평 제고 등이 부담금 도입의 목적이라지만 오히려 재건축 공급을 막아 장기적으로 집값 안정을 흔들고 통계 조작의 부작용으로 사회적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에 주목해야 한다. 부담금 폐지에 따른 재건축 과열 우려는 기부채납과 녹지 확대, 인허가 등 행정절차를 통해 충분히 조정이 가능하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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