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지난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이 옵서버 국가로 초청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G7 수준의 선진국이 됐다’고 자부했다. 한국이 친서방 선진국들 클럽의 8번째 회원국이 되는 ‘G8 편입’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 고위 관리들은 “한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뒤지는 게 뭐냐”면서 공공연히 이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혁신능력, 영향력 등이 세계 6∼8위권에 든다는 내용의 경제단체 보고서도 나왔다.
 
그러나 한껏 부풀어 올랐던 이 같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경제 성적표가 나왔다. 세계은행(WB) 통계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이 3만5990달러에 그쳐 G7 국가들과의 소득 격차가 커졌다. 7만 달러 대인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5만 달러 대인 독일·캐나다, 4만 달러 대인 영국·프랑스·일본과의 격차도 더 커졌다. 맨 꼴찌인 이탈리아의 3만7700 달러보다도 1710 달러가 적었다. 한국은 2020년에 이탈리아 1인당 GNI를 넘어섰으나 2년 연속 이탈리아에 뒤졌다. 그래서 축포를 너무 일찍 터트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명목 GNI는 통계상 착시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OECD 추정치)이 처음으로 1%대로 추락하는 등 구조적으로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했다. 1990년대에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7%가 넘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4%대, 2010년대 3%대로 떨어졌다. 최근엔 2% 성장도 쉽지 않다.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위기가 와도 한두 해면 훌훌 털고 성장엔진을 재가동하던 특유의 강한 모습이 실종된 모습이다.
 
세계 경제의 우등생이자 모범생이던 한국이 이렇게 된 것은 노동, 자본, 생산성 등 3가지 모두에 적색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정부 ‘임기 중 4만 달러’ 약속은 공수표가 될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는 실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가는 데 12년 걸렸고,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가는 데 11년이 걸렸다. 이런 속도가 가면 2027년 무렵에는 4만 달러를 돌파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4만 달러 시대가 요원해 보인다.
 
윤 정부 기간에 4만 달러 시대를 열려면 튼튼한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한다. 무엇보다 환율 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와 한은은 환율 불안을 미국 연준(Fed)의 긴축 장기화에 따른 달러화 강세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옳다고는 보기 어렵다. 수출 부진으로 인한 장기간에 걸친 무역수지 적자와 높은 인플레, 과도한 가계부채 등 우리 내부 요인들에 의한 기초 체력 저하를 간과해선 안 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 부족 현상을 타개하려면 출산율을 높이고 외국 인력 유입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투자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규제를 풀고 시장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무려 17년째 소득 4만 달러 벽을 깨지 못하고 3만 달러 선에 머무르고 있는 이탈리아가 한국과 비슷하게 유럽 최악의 저출산, 포퓰리즘적 재정 풀기, 강력한 노동조합 등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부터 원자력, 바이오, 건설,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생산성은 선진국에 못 미치지만, 생산성 향상 속도는 높은 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 경제가 이미 구조적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으며, 구조개혁만이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한때 저성장에 빠졌던 선진국들이 구조개혁을 통해 실제로 경쟁력을 회복한 사례는 많다. 미래는 어느 쪽으로든 열려 있다. 우리 하기에 달렸다
 
우리 경제가 재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장의 발목을 잡는 중장기적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지부진한 ‘교육·노동·연금 3대 개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야 한다. 아울러 글로벌 무역 질서가 미중 패권 갈등의 고착화와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등에 맞춰져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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