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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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지난 5일 올라온 넥슨 직원의 하소연이다. 최근 게임계에서 일어난 ‘집게손’ 사태로 인해 넥슨 직원들이 본인들의 잘못이 없음에도 어떤 피해를 받고 있는지 여실히 나타난다.
지난 11월 26일, 일요일 새벽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판교 넥슨 본사 일대의 도로 상황이 혼잡해지는 촌극이 벌어졌다. 넥슨 게임들의 PV(Promotion Video) 영상들에 혐오의 뜻이 담긴 ‘집게손’ 표현들이 발견되면서, 넥슨을 비롯해 스마일게이트 등 여러 게임사 직원들은 해당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주말 꼭두새벽부터 출근해야만 했고 커뮤니티에는 이를 성토하는 글들이 개제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집게손’ 표현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대표 상징으로, 해당 커뮤니티의 게시글과 댓글에선 특정 성별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말하는데 주로 사용되어 왔다.
또한 남성을 희화화하는 성희롱의 의미를 담은 혐오 표현으로도 사용돼 많은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고, 현재 해당 사이트는 폐쇄된 상태이다.
해당 표현으로 이미 기업들은 여러차례 곤혹을 겪었던 만큼 기업 환경에서도 민감한 입장으로 부각됐다.
이러한 상황 속 이번 게임 영상 ‘집게손’ 사태는 넥슨 PV 담당 하청 업체 소속 애니메이터의 SNS 상에서의 발언이 누리꾼들에게 발견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애니메이터는 ‘은근슬쩍’, ‘스리슬쩍’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특정 사상 활동을 하겠다고 X(구 트위터)에 글을 남겼고, 자신의 말을 지키려는 듯 실제 해당 애니메이터의 손을 거친 영상들 속에는 ‘집게손’ 동작이 간헐적으로 1프레임 씩 여러 번 등장했다.
통상 영상이 1초에 30프레임씩 흘러 1프레임의 이미지는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과 애니메이터의 SNS 상 발언에 비추어, 해당 표식을 의도적으로 몰래 숨겨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게임사들은 해당 애니메이터가 소속된 업체에 외주 의뢰를 맡겼던 영상에 대한 전수검사와 문제가 발생한 모든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으며, 디렉터 명의로 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연이어 내놓았다.
일부 게임사들은 단순한 사과문 발표에 그치지 않고, 각사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향후 대처 방안도 이야기했다.
대표적으로 넥슨 메이플스토리 김창섭 디렉터는 지난달 26일 “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메이플을 유린하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던전앤파이터 이원만 총괄 디렉터는 “모험가님께 불쾌한 감정을 드리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확고한 입장을 내비쳤다.
논란과 의심이 커진 상황 속 게임사 직원들이 주말 반납과 야근까지하며 발빠르게 사태를 수습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집게손’ 표현을 옹호하는 일부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에는 불이 붙은 상황이다.
특히 일부 옹호자들은 게임사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상을 검증한다는 적반하장식의 입장을 취하고 있어 많은 이들의 공분이 일기도 했다.
또한 넥슨의 임직원들은 이번 사태로 인한 엄연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가해자로 취급하는 목소리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넥슨노조 스타팅포인트 배수찬 지회장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우리는 유저들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검수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다”며 “이에 대한 업무를 한 것일 뿐인데 욕을 먹어 너무 억울하다”고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아울러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이 도리어 넥슨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 것에 대해 “화섬식품노조를 통해 불만사항을 전달했다”며 “민주노총 탈퇴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번 PV 영상 속 ‘집게손’ 표현이 문제인 이유는 혐오 표현을 게임이란 매체에 숨겨 게이머에게 불쾌감을 유발했으며, 그 결과 게임사가 게이머를 대상으로 수익을 벌기 위한 ‘상품’에 피해를 끼친 행위라는 점에서 논란이 더 커지고 있는 부분이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왜 업장에서 사회 운동을 하나? 최근 이러한 문제에 대해 기업 하는 분들의 걱정이 상당하다”고 밝혔으며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도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상 상품을 만든 제조사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수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며 여야 의원이 모두 ‘집게손’ 사태의 잘못을 꼬집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밝힌 정의당 류호정 의원 또한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의도를 가지고 어떤 창작물에 납품을 하는 어떤 영상물에 그런 손 모양을 넣었으면 명백한 조롱이다”며 “내가 쓰는 화장품에 일베 손 모앙 마크 들어간 걸 교묘히 넣었다고 하면 여성 소비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비판의 입장을 드러냈다.
문제는 이러한 표현들로 인해 실제 기업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1년 GS25의 광고 이미지에 ‘집게손’ 표현이 사용되어 GS25 브랜드에 대한 혐오 이미지가 확산됐고, 온라인 상에서 불매운동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단순한 기업 뿐만 아니라 해당 브랜드의 편의점 가맹점주들도 누군가 이미지에 집어넣은 혐오 표현으로 인해 생업에 피해를 입었다.
특히 ‘집계손’ 표현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인이 몰래 사용함으로서 기업 이미지에 낙인이 찍혀 여러 피해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역시 논란이 일자 게임업계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영상이나 이미지 속에서 혐오 표현이 의심되는 콘텐츠를 비공개로 돌리는 등의 발빠른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고 불편함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기업의 특정 제품에 대해 다수의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기업은 그 제품의 불편함을 수정하려 하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라보면 게임업계가 발 빠르게 ‘집게손’이 담긴 영상들에 삭제에 나선 것은 이런 일련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를 사상 탄압이라 부르며 넥슨 등의 기업을 가해자 취급하는 주장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기업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채 혐오표현의 숨은 그림 찾기에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하게끔 만드는 행위가 정당하고 떳떳한 행위인지 되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