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부도, 금융권 확산 부르는 재앙 차단해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업계 16위 대형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자금난에 몰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정부와 금융계가 파장을 줄이기 위해 긴급대책 마련에 나섰다. 워크아웃은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이 채권자와 협의, 상환 일정과 이자율 등 채무와 재무구조를 조정하는 벼랑 끝 절차라서 협력 업체나 금융권 등 거래선까지 미치는 파장이 크다. 태영이 시공하는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에게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위기에 몰린 직접적인 이유는 성수동 오피스개발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부동산 개발에 따른 미래의 수익성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받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지목된다.
 
부동산 시장에 돈이 모이고 건물이나 주택을 분양받으려는 수요가 많으면 거칠 게 없으나 금리가 오르고 수요가 감소해 미분양이 늘면 부동산 PF는 치명적인 족쇄로 작용한다. 연체가 눈덩이처럼 증가하면서 시행사와 건설사(시공사)는 물론 돈을 빌려준 금융권까지 타격을 받는다. 태영이 직접 돈을 빌린 차입금은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 등 80여곳에 1조3000억원 수준이며 PF 대출 보증을 선 사업장은 모두 122곳으로 보증액이 9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직접 대출과 보증 채무를 합한 채권단 규모가 400여곳에 달해 협상 절차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우선 태영의 워크아웃 신청 파장이 관련 업계와 금융권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 연쇄 부도를 막고 만기 연장 등 협상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지난해 9월말 현재 134조3000억원으로 연체율도 2020년말 0.6%에서 2.4%로 급증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부동산 PF 위기설이 널리 퍼져 태영 사례는 부실 사업장 옥석 가리기의 시작에 불과하고 악성 사업장 정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이 우세하다.
 
금융권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 PF 부실은 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무엇보다 1900조원에 육박하는 금융권 가계부채 규모에 심각한 우려가 쏠린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0.2%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특히 은행권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고 있다. 고금리 추세에서 주택거래가 위축되면서 주담대 대출 연체율도 올라가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폭탄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다. 새해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아직은 희망 섞인 관측에 불과하다. 국내 건설시장은 지난해 11월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후 미분양 물량이 1만465가구에 달해 줄도산의 위기감이 가시지 않는다.
 
부동산 경기가 지나치게 민감한 부침을 거듭, 연쇄 부도를 불러오는 현상은 경제 불안을 촉발하는 한국경제의 취약점으로 꼽힌다.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냉·온탕을 오가는 급격한 경기변동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에 규제가 더해져 해파리처럼 덕지덕지 엉겨 붙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수급과 가격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택 부족이 예상되는 시기에는 투자가 부동산 시장으로 향해 건설을 촉진하고 반대로 공급이 넘치면 시중 여유자금이 유통 수요를 받쳐줘 폭락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토지 및 주택공급 제한과 부(富)의 편중을 우려한 나머지 각종 세제와 대출, 행정 절차로 꼼꼼하게 묶어 경기와 무관하게 규제를 강화했다.
 
1가구1주택을 금과옥조로 삼아 다주택 보유를 투기로 몰고 양도소득세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세금과 대출에서 부담을 주는 제도는 이제 재검토할 시기가 됐다. 주택공급을 원활하게 만들어 무주택자에게 기회를 더 주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1주택만 고집해서는 주택 유통시장을 살리기 어렵고 임대 공급도 차질을 빚게 마련이다. 다주택의 기준을 완화해 민간 여유자금이 시장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 3주택 이상을 다주택 기준으로 삼아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와 거래세 중과를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의 자금조달 기능을 활성화하고 민간 보유량을 늘려 조절 기능을 살릴 수 있다.
 
4월 총선에 규제개혁 민심 실려야

지난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와 재산세를 올려 집 가진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더 안기고 무주택자들로부터 갈채를 받겠다는 고약한 정책을 쓰다가 조세저항을 유발했다. 게다가 세입자를 위한다는 단순한 발상으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신고제 등을 담은 임대차 3법을 도입해 전세가 폭등과 물량 부족,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 등 부작용을 키웠다. 그 결과 전세와 월세 가격이 한꺼번에 올라 세입자 부담이 오히려 늘고 전세 사기까지 기승을 부리게 했다. 자금이 부족한 무주택자들이 중간 사다리로 삼아 내집 마련의 발판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전세 시장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규제를 과신한 정부 개입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시장기능을 살려야 재건축·재개발에 나서는 건설사들의 자금조달이 원활해지고 부도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이곳저곳에서 빚을 내 어렵게 집을 마련한 젊은 세대들이 고금리와 거래 절벽에 고통을 받고 있다. 대출 이자 갚기에 허덕이는 주택 매입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적정 가격에 집을 팔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가계부채라는 폭탄을 안고 있는 한국경제에서 뇌관을 제거하는 길이기도 하다. 세금 중과와 규제 남발에 따른 폐해를 의식해 집권 초기 제도 개선을 다짐한 윤석열 정부는 야당 위세에 눌려 입법과정에서 자주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좌파의 반발에 밀려 규제개혁 의지도 물러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다가오는 4월 총선의 귀추가 경제에 미칠 파장이 사뭇 심대하게 보인다. 총선을 정권이나 야당에 대한 정치적 심판으로만 볼 게 아니라 경제정책 선택의 가늠자로도 여겨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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