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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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코앞에 다가와 있어서 정치 관련 대화가 많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다 훌륭하다. 각 분야에서 일류다. 다만 정치만 꼴찌 수준이다. 정치만 좋아지면 정말 우린 선진국일 텐데...”하는 얘기를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축구가 비록 요르단에 져서 결승엔 오르지 못했지만 축구 종주국 명문 구단 주장 완장을 차고 활약하는 손홍민, 그밖에도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등 선수 이름만 들어도 행복하다.
스포츠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K반도체 등 K자 붙은 한국인들의 명성은 지구촌을 쥐락펴락 한다.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 하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를 새삼 살펴보고자 여러 자료들을 섭렵해 봤다.
얼마 전 국내 일간지가 조사한 내용을 보자. K자가 붙은 단어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뭐냐는 설문에 응답자 절반 가량이 K팝을 꼽았다.
K팝에 이어 K드라마.영화 K반도체 K푸드 순으로 응답자가 많았다.
반면 K자가 붙은 가장 부끄러운 단어로는 K정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음으로는 K지옥 K장남 장녀 K워킹맘 K직장인이 뒤를 이었다.
K정치가 부끄럽다고 답한 이들은 50,60대 장년층일수록 높았다. ‘부정 부패가 높은 사회라는 인식, 그리고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널리 깊게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스털린의 역설(逆說)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작년에 한국인 104만 명에게 ‘지금 얼마나 행복합니까?’를 물었다.(카카오 플랫폼 ‘마음의 날씨’)
행복과 관련된 10가지 문항으로 조사, 행복지수를 산출했다. 결과는 10점 만점에 5.18점. 낮은 수준은 차치하고, 행복도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다.
아프리카 수준인 4점 이하와 북유럽 수준인 8점 이상이 각각 20%씩을 차지했다.
가장 행복한 세대는 멋모르고 뛰노는 10대 남성(6.2점). 하지만 행복감이 좌절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다.
20대는 전 세대 가운데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5.06점). 청년들의 삶이 팍팍함을 보여준다.
취직이 힘들고 결혼 주택 마련 등 어느 것 하나 행복과 거리가 멀다. ‘N포세대의 아픔’을 상징한다.
그러다 보니 20대 우울증 환자나 불안장애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953년 67달러에서 2021년 3만4870달러로 520배 증가했지만 유엔 세계행복지수는 2012년 56위에서 2022년엔 59위로 오히려 떨어졌다.
5년째 1위인 핀란드는 소득도 많지만 삶의 행복도도 높다. 불평등이 덜하고 약자를 위한 사회보장이 잘돼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이 세계 30여개 나라를 비교 분석한 결과 ‘국가 전체 부(富)의 총량이 증가해도 함께 행복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다음에는 행복은 사회적인 조건보다 개인적인 요인이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고 결론내렸다.
‘부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돈만으로는 행복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이스털린의 역설)
한국인 행복지수 최하위
통계청이 내놓은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스스로 평가한 삶의 만족도는 2019~2021년 평균 5.9점(10점 만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회원국 평균(6.7점)보다 낮았다.
일본(6.0점) 그리스(5.9점)와 비슷한 최하위권. 콜롬비아(5.8점) 튀르키에(4.7점) 두 나라만 우리보다 낮다.
만족도가 이처럼 낮은 것은 삶의 질이 떨어져서다. 여가 주거 가족 등의 분야에서 삶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힘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보여주는 사회적 고립도는 OECD 회원국중 네 번째로 높았다. 그러다 보니 고독사나 자살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가장 우울한 나라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은 작년말 한국 여행기를 자신의 유튜브에 올리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말해 화제가됐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는 영상물에서 “ 한국은 생동감있는 문화를 간직한 놀라운 나라이지만, 높은 불안 우울 알코올중독 자살률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맨슨은 한국 사회의 우울증이 “유교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무시하고 단점을 극대화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불행히도 한국은 유교의 가장 나쁜 부분인 수치심과 남을 판단하는 것을 극대화한 반면, 장점인 가족이나 지역 사회와의 친밀감을 저버렸다”고했다.
맨슨은 그러면서도 한국인의 강점으로 ‘회복력’을 꼽았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저력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회복력을 보여준 상징이라고 지적한다.
이제 우리도 외형적 성장에 치중해온 국가의 목표도 수정해야 할 때이다. 경제 대국의 위상에 맞게 일상의 질, 삶의 수준을 높이는데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맨손으로 경제를 일궈온 세월, 압축성장이 가져온 갖가지 부작용들,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양극화나 불평등 등등 해소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우리 모두에게 지워진 짐이다. 미래 세대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