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외면한 의료 대란에 분노 확산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의과대학 증원을 놓고 벌어진 전공의 등 의사단체의 집단반발로 의료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암을 비롯한 중대 질환으로 수술이 시급한 환자들이 날짜조차 잡지 못한 채 대기 중이라는 뉴스가 남의 일 같지 않게 초조하게 다가온다. 시설 좋다는 서울의 대형 병원을 찾아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고시원과 비슷한 ‘환자방’에서 병원을 떠난 의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중한 병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인데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치료도 못 받고 내몰렸으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갈수록 심각해지는 의료 대란 소식에 환자와 그 가족만이 아니라 대부분 국민은 의대 증원에 왜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진료를 거부하는가 분노하고 있다. 평소 ‘선생님’이라는 깍듯한 호칭을 들어가며 환자를 진료하던 의사들이 무슨 이유로 생명을 돌보는 임무를 내팽개친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의사가 연 2000명씩 급증하면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가 늘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하고 의료 교육 현장의 인프라 부족으로 교육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의사단체들이 내세운 이유다. 필수·지방의료를 개선한다는 정부 설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의사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의사단체 주장을 일단 받아들인다 해도 확실하지도 않은 장래의 우려나 가능성을 이유로 환자 생명을 돌보아야 하는 의사의 고귀한 임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게 국민 여망이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응답이 70~80%에 이르는 주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또 의료진의 현장 복귀가 시급하다는 의견은 60%를 넘었다.
 
의사들은 누가 뭐라 해도 자질이 뛰어나고 우리 사회에서 선택받은 인재들이라는데 이론이 없다. 초·중·고부터 두각을 보인 수재들이 의대에 진학, 예과 2년을 포함 대학 6년을 공부하고 전문의가 되기 위해 전공의 수련 등 긴 세월을 매달려야 한다. 그 과정이 어렵고 때로는 혹독하지만 성취를 위한 뚜렷한 목표와 환자 생명을 돌보아야 한다는 고귀한 신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정 과정을 마친 의사는 일반 회사원 평균치에 비해 훨씬 높은 연봉과 함께 사회적으로 존경과 대우를 받는 직종이다. 그들의 자질과 노력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 최근 통계를 보면 한의사를 포함한 국내 임상 의사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이며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명 당 7.2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정부는 지난 20년 가까이 의대 정원을 동결한 탓에 2035년이면 의사 1만5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내년부터 5년간 의대 정원을 해마다 2000명 씩 증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필수의료 인력을 빼내가는 도수치료 등 비급여와 미용 의료도 손을 보아 비급여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개원 면허제도를 도입해 쏠림을 방지하기로 했다. 즉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추진해 내과·산부인과·소아과·응급의학과 등 위험성과 난이도가 높은 의료 분야의 인력을 확충하고 미용·성형 등 비필수 분야는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엘리트 집단행동, 독선 부를 우려
 
개원의 중심인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의료 정책이 혼합진료 금지로 국민의 치료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반대한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개원 면허 도입으로 수련을 마친 후 선택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의사단체들이 정부안에 대해 강력한 반대 투쟁에 나선 배경에는 증원에 따른 건보재정 악화와 교육 부실화 우려만이 아니라 혼합진료 금지와 개원 면허제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의사가 되기 위한 어렵고 힘든 과정을 우습게 보고 정부가 전문 영역에 간섭하려 든다는 반발이다. 환자 생명을 담보로 한 의사단체들의 현장 이탈은 그래서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료 분야에 인재가 쏠려 경쟁이 될 만한 싹은 미리 견제하고 현 회원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진료 제한과 면허 강화 등 간여 사항은 치워달라는 요구다. 의사들이 만든 직능단체가 회원 권익 보호에 몰두해 본분을 외면하는 직역 이기주의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다 엘리트 의식까지 가세하면 국민 여론이나 비판을 외면하는 독선에 흐르기 쉽다.
 
의사단체들이 자존심 상하는 이기주의 지적을 받지 않으려면 우선 업무에 복귀해 진료에 임하면서 당국과 현실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 막무가내로 정부안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할 게 아니다. 협상이 가능한 선에서 얼마든지 의사들의 요구를 반영할 길이 남아 있다. 정부가 연 2000명 증원을 물러설 수 없는 선이라고 버티고 있으나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부동의 조건이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다한 뒤에도 기존 정책이 지속될 것으로 속단하기 어렵다. 정책이란 주어진 여건과 목표, 여론 향배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의사단체는 이미 비례대표 국회 진출 등을 통해 입법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의사단체가 의대 증원 저지라는 눈앞의 목표에 집착해 환자들의 위험에 방치해 국민의 원성을 자초할 때가 아니다. 엘리트답게 흐름을 읽고 답할 줄 알아야 한다. 의사단체가 패배했다고 여길 사람은 없다. 서울대 의대 졸업생들을 향해 “경제적으로 수준이 높은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김정은 학장의 당부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