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기자
▲ 김준혁 기자
최근 안전자산인 금과 대부분 위험자산으로 인식되는 비트코인이 연일 최고가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이 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상품이 끝도 모르고 상승하고 있는 아이러니 한 상황에 놓였다. 이제는 金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어버린 사과다.

이달 초 사과 가격은 3만원대를 넘어서며 고공행진을 그리다가 현재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이나 동네 마트에서는 한 봉지에 든 사과 5개 가격은 2만 원을 웃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통계청이 지난 6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지수는 113.77로 1년 전과 비교해 3.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체감물가와는 다르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물가 상승률의 안정 범위로 대부분의 국가가 2%로 잡고 있어 3%대 상승률도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실제 장바구니 물가는 그 이상이란 것이 대부분의 소비자들의 견해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률을 실제 수치보다 더욱 극심하게 체감하고 있는 주된 이유로는 국내 먹거리 물가 상승률을 꼽고 있다.
 
해당 통계청 발표에서도 농산물 물가는 전년보다 20.9%나 올라 전체 물가를 0.80%p를 끌어올렸으며, 신선과실은 41.2%나 급등해 지난 1991년 9월 43.9% 상승한 이후 3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 중에서도 사과가 71.0% 상승해 애플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애플레이션’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전세계 시가총액 2위 기업인 ‘애플’의 주가가 지난해 48% 상승한 것과 비교해도 국내 사과값이 비율적으로 더 많이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사과값 폭등의 주요 원인으로는 지난해 기상악화와 병충해 피해로 작황이 부진해 사과 공급이 줄어든 점이 꼽힌다.
 
사과꽃의 개화기 시점에 꽃샘추위 등으로 인해 기온이 급감할 경우 꽃이 그대로 얼어버려 이는 곧 과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지난해의 경우 봄철 낮은 기온과 우박 등으로 인해 사과꽃이 어는 경우가 잦았으며 여름에도 장마, 태풍, 폭염 등으로 인한 병충해까지 이어져 작황이 급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42만5400톤으로 전년 수확량인 56만6000톤보다 24.8% 감소했으며 저장량 또한 약 20만3000톤으로 31% 가량 줄어들었다.

하지만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농가들은 내다팔 사과가 없어 비싸진 것이란 울분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울상인 상황이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사과, 배 수요의 대체를 위해 수입 과일과 농산물, 가공식품에 대한 할당 관세 대상 품목을 대폭 확대 및 물량을 무제한으로 풀겠다”며 본격적인 사과값 잡기에 나섰다.

정부도 발 맞춰 1500억원 규모의 농축산물 긴급 가격안정자금 투입을 결정했으며, 유통업계에서도 할인 행사, 못난이 과일 판매 확대 등 과일 물가 잡기에 동참했다.

이러한 자금 지원이 쏟아지면서 가격은 다소 안정화된 상황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사과(후지·상품) 10개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24250원으로 일주일 전인 15일 기준보다 11.6% 하락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격하락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소비자 반응과 함께 일시적인 효과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은 여전히 강하게 나오고 있다.

통상 시장에서 상품에 대한 가격이 결정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수요와 공급의 만남에 의해서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정부 대책은 단순 현재 사과값에 대한 지원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이들의 주된 요지다.

특히 일각에서는 지금처럼 현금성 지원으로 대책을 해결하려 할 경우 도리어 사과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가격이 더욱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농업 전망 2024 보고서를 통해 2033년까지 사과 재배면적이 매해 줄어 축구장 4천개에 해당하는 2900ha가 사라질 것이란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현재 사과 재배면적 3만3800ha 중 8.6%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 같은 사과면적 축소와 기후 변화 등의 문제로 인해 공급 충격이 또 다시 발생할 수 있으며, 사과값 폭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를 두고 사과 가격 안정화를 위해 사과 수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점차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에서는 사과 수입에 대해 검역협상 단계를 거쳐야하기에 사실상 당장의 수입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수입 검역 절차는 8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현재 가장 많은 절차가 진행된 일본조차 지난 2011년부터 5단계에 걸쳐 있는 등 13년간 검역절차가 멈춰있는 상태다.
 
당장 수입을 통한 수급이 어렵더라도 사과 공급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과거와는 다른 기후 변화로 인해 3, 4월 냉해가 반복되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지난해와 같은 작황부진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또 이같은 사과 물가 상승이 발생할 때마다 대규모 지원금을 투입할 수도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높은 농산물 가격 수준과 누적된 비용압력 등이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하며 높은 물가가 금리 인하 전환 시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많은 우려 속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사과 비축도 도입을 검토한다든지 비축 대상이나 품목과 물량을 신축적으로 해서 수급관리를 제대로 하겠다”며 ‘과수산업 경쟁력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 약속한 바 있다.

그럼에도 현재 현재 대형마트 등에서는 과일, 채소 등을 비교적 저렴하게 사기 위한 소비자들의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장기적인 대비책 마련이 없는 상황 속 특정한 사치품이 아닌 단순 먹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경쟁을 펼쳐야 하는 광경은 단순히 사과 하나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이란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촌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과일 수급의 중장기적 대책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국민의 미래 먹거리 안정을 위해 이번 정부의 대책 마련 계획이 말 뿐만이 아닌 꾸준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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