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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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모호한 조항으로 인해 지난 2018년부터 남발된 ‘탄핵’이라는 헌법적 권리가 다시금 사용됐으나 이미 4차례의 탄핵 소추 속 살아남은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재차 정치적 목숨을 건졌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Reuters)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페루 의회는 볼루아르테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탄핵소추안을 49대 33(12명 기권), 두 번째 탄핵소추안을 59대 32(11명 기권)으로 부결시켰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현재 불법 자산증식과 공직자 재산 미신고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부통령 시기를 포함한 약 2년여간 소화한 공식 일정에서 자신의 월급의 3배가 넘는 1만4000달러(약 1893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비롯해 최소 14점의 시계를 착용한 것이 드러나면서 입방아에 올랐다.
해당 시계들의 취득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검찰의 수사 대상에까지 올랐다.
이에 지난 3월 검찰이 대통령 자택 등을 급습하고 지난 1일에는 장관 6명이 사임하는 등 페루는 이른바 ‘롤렉스 게이트’ 논란이 불거졌다.
다만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즉각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내가 가진 것들은 18세 때부터 수익금으로 구입한 오래된 물건”이라고 해명하며 “나는 깨끗한 손(with clean hands)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2026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변호인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압수수색에 동원된 경찰 인력이 과도했다”며 “쇼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반박에도 불구하고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5일 블룸버그통신(Bloomberg)에 따르면, 입소스(Ipsos)의 지난달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볼루아르테 대통령에 대한 대중 지지율은 9%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혼돈은 페루 헌법상의 애매모호한 조항들로 인해 탄핵이라는 권리를 소위 ‘난사’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페루 헌법은 위법 행위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 ‘도덕적 무능’ 조항에 따라 탄핵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130명으로 구성된 하원에서 87표만 얻으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다.
이 때문에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에 오른 6명 중 5년 임기를 마친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마누엘 메리노는 지난 2020년 취임한 지 불과 5일 만에 사임을 하기도 했다.
한편, 페루 의회는 이러한 혼란 속 내각에 대한 신임투표를 가졌다.
같은 날 의회는 지난달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임명해 취임한 구스타보 아드리안젠 총리 내각에 대한 신임투표를 열고 신임 70표, 불신임 38표, 기권 17표로 정권을 유지하게 됐다고 선포했다.
페루 헌법은 새 내각이 임명된 지 30일 이내에 의회에서 신임투표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