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승리 경제산업부 기자
▲ 서승리 경제산업부 기자
“정작 순기능을 누려야 하는 기업들이 눈치만 보는 분위기죠”
 
지난해 ‘뻥튀기 상장’ 이슈로 논란에 휩싸인 반도체 업체 파두로 인해 최근 과도하게 엄격해진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두고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는 상장 이후 최초로 공개한 분기 실적이 추정치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투자자들 사이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상장 직전 제출한 연매출 추정치 1200억원 가량에 비하면 2분기와 3분기 매출을 합친 금액은 4억원도 채 안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주주들은 집단소송을 준비하기도 했으며, 일각에서는 ‘사기 상장’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분위기는 파두가 상장에 이용한 ‘기술특례상장제도’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져나갔다.
 
기술특례 상장제도는 한국거래소가 정한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형식적 심사 요건을 갖추기 못했더라도 기업의 기술력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게 상장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지금 당장 수익성이 높게 나타나지 않아도 순수하게 기업의 기술력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다.
 
제도의 취지 자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미래를 이끌어갈 잠재력이 있는 기업에 빠르게 기회를 주는 순기능이 있지만, 파두 사태 이후 더욱 엄격해진 기업 심사 기조로 문턱은 높아지고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한국거래소(KRX)의 자료에 따르면 상장예비심사를 진행하는 기업 38곳 중 21곳은 상장규정 상의 심사기간인 45영업일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심사 기조가 더욱 보수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사실상 기술특례상장제도 본연의 취지에서 멀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는 금융당국과 벤처투자업계가 바라보는 기술특례제도의 관점 차이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당국의 입장에서는 코스닥을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생각해 기업의 기술력과 미래 성장성 보다는 불완전투자 방지와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엄격한 관리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반면, 벤처투자업계는 기업들이 증시에 입성해 효율적인 자금조달을 도모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기술특례를 통한 증시 입성을 모험자본시장의 연장선으로 생각해볼 때 지나친 규제는 오히려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기술특례를 통해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에게도 책임론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개발 등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투입해야 하는 IPO를 통한 조달 자금이 기업의 ‘곳간’ 채우기로 이용되는 사례들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들 중 일부는 회사를 위한 투자보다는 현금 확보를 위해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난다”며 “이는 결국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부진한 주가를 형성하게 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이후 기술특례를 통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 중 스팩합병 및 상장폐지 종목을 제외하고 68%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공모가를 밑도는 주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5년 해당 제도가 도입된 이후 약 200곳 이상의 기업들이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진출했으며 지난해만 해도 30개 이상의 기업이 이를 통해 코스닥에 입성했다. 과연 이러한 기업들 중에 실질적으로 제도의 취지에 부합해서 선순환의 구조로 성장을 도모하는 기업은 몇이나 될지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다.
 
기술특례상장 본연의 취지를 살리고 진정 성장성 있는 기업을 위해서라면 금융당국과 벤처투자업계 양측의 관점에서 제도에 대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들도 조달한 자금에 대해서 투명한 운영의 태도가 필요하다.
 
제2의 파두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기술성 평가 강화를 위한 전문가 투입, 투명성을 위한 IPO 직전 매출 공시 의무화 등 금융당국과 투자업계, 상장 기업 사이의 교류를 통한 제도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2의 파두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코스닥 시장 개설 당시 본연의 취지인 ‘벤처기업을 위한 효율적 자금조달’이라는 취지에 맞도록 보완된 기술특례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한국 증시를 이끌어갈 유니콘 기업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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