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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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물가, 고유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모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소비자의 혜택을 늘리고 있다. 물론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가볍게 하기 위한 기업의 고육책이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물가가 훨씬 낮았던 시절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혜택들을 쏟아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공존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국내 유통 시장 상황을 흔든 대형 경쟁자의 출현이 1차적 원인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바로 초저가를 앞세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국내 시장 진출 선언을 본격화한 이후부터다.
중국 물품에 대한 직구 플랫폼으로 몇몇 소비자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지만 저렴한 상품 가격에 입소문을 타고 국내 이용자수가 늘어나자 지난해 한국어 상담 서비스 지원을 시작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진출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케이베뉴’(K-venue) 카테고리를 신설하고 국내 제조업체 제품의 판매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해태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한국 기업들의 브랜드관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법인은 최근 임직원을 100여명까지 늘리고 334억원의 자본금 증자를 단행했으며, 모기업 알리바바는 지난달 통합물류센터 구축 계획 등을 포함한 11억달러(약 1조5071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한국 정부에 제출하며 한국 시장 진출에 가속도를 건 상황이다.
이같은 공세에 지난 3월 알리의 MAU(월간활성 이용자수)는 887만명으로 1위 쿠팡(3086만명)에 이어 국내 2위를 기록하며 국내에서 매섭게 치고 형국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국내 유통 플랫폼도 빠른 대응에 나섰다.
먼저 쿠팡이 전국 ‘쿠세권’ 구축을 선언하며 3조원 투자를 발표했다.
앞서 쿠팡의 당일 및 새벽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의 경우, 회사의 풀필먼트센터(FC)가 구축된 지역에서만 가능했지만 쿠팡이 신규 FC 구축을 위해 대규모 자금 투입을 밝힌 것이다.
알리에 대한 대응으로 쿠팡이 나서자 국내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로켓배송 혜택 지역이 늘어나는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또한 쿠팡은 알리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락인(Lock-In)’ 효과를 노린 멤버십 혜택 강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표적으로 쿠팡은 ‘와우’ 멤버십 가입자에게 자사 배달 플랫폼인 ‘쿠팡이츠’의 무료 묶음배달 서비스를 개시했다.
쿠팡이 움직이자 이번에는 배달 플랫폼 경쟁업체인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대응으로 무료배달 서비스에 나서며 소비자 모시기에 나섰다.
알리가 불러온 경쟁이 배달 플랫폼에 영향을 끼쳐 소비자 후생 증대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알리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쿠팡이 ‘와우’ 멤버십의 혜택 증가 및 다변화와 함께 멤버십 가격 인상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신세계가 움직였다.
G마켓은 신세계그룹의 통합 멤버십인 ‘신세계유니버스클럽’의 연회비를 5월 한 달간 3만원에서 4900원으로 낮추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멤버십은 무료배송, 할인쿠폰 지급 등의 혜택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플랫폼의 묶어둘 수 있는 락인효과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상황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도 틈을 노려 멤버십 가입 프로모션 및 당일·일요배송을 선언하고 컬리가 자사 멤버십 신규가입자에게 3개월 무료 혜택을 약속하는 등 플랫폼 멤버십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기업 간 경쟁이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효과를 불러일으키자 중국 커머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통업체의 매출이 도리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 주요 25개 유통업체 매출은 15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9% 상승했으며 특히 각축장이 벌어지고 있는 온라인 유통에서는 매출이 15.7% 올랐다.
기업 간 경쟁이 소비자 후생 증가로 이어지고 다시 기업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 효과 속에서도 물가 억누르기에만 급급했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까지도 정부는 식품사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을 하지 않도록 직간접적인 압박을 이어왔다.
하지만 총선 이후 외식비와 가공식품 먹거리 물가가 물밑듯이 오르는 것을 두고 정부가 그동안 억눌러왔던 것이 일제히 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고물가 상황 속 국민의 생활 안정을 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점에서는 동감하지만 그 방식이 억지로 물가 상승을 억누르는 방식 옳은가에 대해서는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기후위기,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원자재 가격, 유가 등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기업들을 옥죄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대외적인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면 그 차선으로 기업 간 경쟁을 유발하는 방식도 고민해봐야 한다. 경쟁 속 기업은 강제적이 아닌, 자발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높이려 움직이기 마련이다.
알리가 불러일으킨 국내 유통 경쟁이 고물가 시대 속 정부 대응 방법의 힌트가 되어주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