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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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미개정 헌법불합치 법률들이 오는 29일 임기가 끝나는 21대 국회에서 개정될지 여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소관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된 개정안이 10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 해당 조항의 효력은 즉각 소멸된다. 이에 따라 헌재는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인 효력 정지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될 경우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고 그 법을 한시적으로 존속시킨다. 새 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국회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입법 기한에 맞춰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개정 시한을 넘기는 게 다반사다. 개정 시한이 넘어가면 당연히 기존 법의 효력은 사라진다. 개정 시한 이후 대체 법안이 마련될 때 까지 입법 공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낙태법 등이 대표적이다.
헌재는 2019년 4월 형법의 낙태죄 조항에 대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2020년 말까지 1년 반의 개정 시한을 줬다. 그러나 5년이 지났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시한이 넘어가자 2022년 4월 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는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의 포괄적 보장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물론 대체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법이 효력을 상실했는데 새 법이 없으니 정부로서는 낙태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인지, 낙태약을 허용할 것인지 등 관련 규정을 정비할 수 없다. 그래서 낙태 수술이 가능한 임신 주수가 병원마다 제각각이고 낙태약이 시중에서 불법 유통되고 있다. 임신 중단을 해야 할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불법 시술과 불법 약 구매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사정이 더 심하다. 2009년 헌재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함치 결정을 내리고 2010년 6월 30일을 개정 시한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15년째 방치돼 있다.
헌법재판소 통계에 따르면 1988년 헌재 설립 이후 위헌 법률은 342건에 달한다. 제21대 국회가 시작된 2020년 이후 현재까지 국내 위헌 법률은 59건에 달한다. 미국 14건, 일본 1건 등에 비해 훨씬 많은 수준이다. 이처럼 위헌 법률이 많은 것은 너무 허술하고 쉽게 법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10명의 도장만 받으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부실한 법안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에 목매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안 한 채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문제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일단 법을 통과시키고 시행령을 갖다 붙이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시행령적 발상으로 법을 만드는 것은 헌법 정신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남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의원은 "헌재가 엄격한 논증 없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단순위헌도, 단순합헌도 아닌 '제3의 결정'이 잇따르면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은 "헌재가 어느 부분이 위헌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국회가 입법 기준을 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집시법과 지방자치법의 경우 어떤 식으로 개정하더라도 다시 헌재 판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위헌 법률 방치로 인한 피해자는 국민이다. 특히 상속이나 낙태법처럼 대상자가 많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헌법불합치 법률보다는 ‘채 상병 특검법’이나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정쟁 법안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개정이 시급한데도 헌법불합치 법률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