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벤처캐피탈(VC)에서 10년간 근무해온 한 심사역은 기자와의 인터뷰 중 최근 수도권 출장이 잦아졌다며 이처럼 말했다.
이는 본격적인 투자유치 시즌이 다가오면 많게는 한 달에 절반 이상 수도권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방의 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잦은 수도권 출장의 이유는 간단하다. 수도권에 다수의 VC와 관련 업체들과 관련 행사 등이 집중되면서 지역의 창업기업들도 적극적인 투자유치를 위해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이다.
1980년대 국내 1세대 벤처캐피탈(VC) 등장 이후 우리나라 창업생태계는 그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높은 성장을 기록해왔다. 창업기업의 수와 함께 투자 규모도 크게 증가했지만, 창업생태계에는 ‘불균형’이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문제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지역 성장지원 서비스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지역의 창업생태계는 수도권과 비교해 큰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술창업기업의 약 60%가 수도권에 소재하고 있으며, 수도권 벤처투자 비중은 전체의 80%에 육박하고 있다. 또한 2023년 기준 일부 지역들의 경우 등록된 VC는 단 1곳에 불과했다.
이 같은 수도권 쏠림 현상은 산업,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지만, 지역의 창업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과 같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벤처 생태계의 지역 불균형 현상은 반드시 해결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역 성장을 위해 투자 및 보육 서비스경쟁력 강화, 인프라 조성, 자금조달 기회 확대 등의 주요 방안들을 제시했다.
액셀러레이터(AC)의 신속한 투자금 회수를 위해 지역 AC 세컨더리펀드의 출자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AC가 운용하는 개인투자조합에 지자체를 포함한 법인 출자 허용 비율도 늘린다. 또한 모태펀드 지역계정 출자규모 확대, 지역 우수 VC, AC 벤처펀드 특별보증 우대 등도 담겼다.
문제는 AC들은 투자한 구주를 매입해줄 수 있는 세컨더리펀드가 없기에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 AC의 경우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시장으로 펀드가 없어도 매각 및 회수가 이뤄지지만, 지역의 경우 구주를 매입해줄 수 있는 VC도 적기 때문에 지역 AC들은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AC 세컨더리펀드 출자 규모 확대는 지역 AC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일각에서는 실효성에 대해 의문도 함께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창업 3년 이내의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AC는 기업의 시드단계에 투자해 시리즈B 단계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통상적으로 시리즈B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투자규모를 감안하면 정부가 제시한 금액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 이들의 주요 견해다.
또한 지자체를 통한 지역 개인투자조합 활성화 방안에서도 벤처펀드에 비교해 규모가 작아서 적극적인 출자는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렇지만 정부가 벤처생태계의 지역간 불균형을 인식하고 정책을 내놓은 것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된 지적들에 대해 추가적인 보완이 따른다면 불균형 해소는 더욱 빠른 시일내에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업계를 위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지역에 투자하고 싶은 스타트업이 많아지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모태펀드의 일부 비중을 지역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를 통해 지역에도 모험자본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지방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 시키는 방안이다.
아울러 최근 크게 증가한 CVC(기업형 벤처캐피탈)과 중소형VC 간의 협력체계 마련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CVC의 급격한 증가로 중소형 VC들의 입지가 좁아지며 벤처 생태계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만큼 각각의 장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벤처의 본 의미가 ‘모험’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만큼 창업기업들을 위한 ‘모험 자본’이 수도권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으로도 유입돼 균형 잡힌 벤처생태계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