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얼마 전 한덕수 국무총리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나라 살림 장부를 보고 파탄 지경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 통제 관리체제로 넘어간 이른바 ‘IMF 사태’ 직전, 당시 재무부에서 청와대 파견 근무 중이던 경제비서관의 비감 어린 회고를 들은 적이 있다.
 
근무를 마치고 밤늦게 청와대를 나서던 그날 ... 그에게 펼쳐지는 광화문 네거리는 고요했다. 며칠 뒤 드러날 ‘국가부도’ 사태를 이 거리도, 국민 어느 누구도 알 리가 없었다.
 
나라 걱정으로 가득 찬 서류 가방을 들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귀가했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경제주권이 IMF에 넘겨진 듯, 사사건건 그들의 간섭 받아 가며 위기를 추슬러야 했다.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 형제들이 하루 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됐다. 거대 기업이 한 순간에 공중 분해되고, 수많은 중소 업체가 문을 닫아야 했다.
 
자식들 돐 반지까지 장롱에서 꺼내 국가 경제 위기 수습에 쓰라고 내놓는 금 모으기 운동은 눈물겨웠다.
 
금 모으기 운동 잊었는가
 
원인과 상황은 다르지만 국가 재정이 엄청 어려웠음을 경제 관료들은 좀 더 일찍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입맛에 달콤한 현금 몇 푼에 환호하며 표를 주고, 빚더미는 미래 세대에 떠넘기며 나라 살림 거덜 내는 지름길’ - 이것이 바로포퓰리즘이다.
 
같은 시대를 사는 지구촌 곳곳에서 포퓰리즘의 후유증으로 재정이파탄나고, 국민 삶을 피폐 상태로 몰아넣은 나라가 한 두 곳인가.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치인들의 집권을 위한 재정 포퓰리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주요 공약이 전 국민 25만원 지원이다. 민생 회복 지원금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씩을 주자는 것이다.
 
이에 정부 여당이 강력 반대하고 일반 국민들도 선뜻 반기기 보다는 고개 갸웃하는 경향이 일자 이 대표는 일괄 지급에서 한발 물러서서 차등 지급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력 반대로 추경예산 편성이 어렵자, 민주당은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서라도 25만 원을 반드시 지급하겠다고 주장한다.
 
25만원 일관 지급엔 13조 원이 필요하다. 이 정도는 우리 재정 규모로 보아 어려운 민생 돌보는데 쓸 여유가 충분하다는 게 이 대표 주장이다.
 
13조 원으로 끝난다면야 열 번 백번 찬성이다. 포퓰리즘은 아편과 같다는 건 고금을 막론한다.
 
주거니 받거니, 여 야(與 野) 포퓰리즘이 문제
 

공짜 돈 받는데 한번 맛 들이면 중독된다. 안주면 불평이다. 주는 쪽(정치인)에선 내 돈 아닌 정부 곳간 열어 주고 권력 잡는데 취하면 걷잡을 수 없다. 남미 여러 국가와 유럽 일부 나라의 생생한 예가 있다.
 
그러다 보니 야당이 포퓰리즘 퍼주기로 집권하면, 다음엔 상대 당이 그 유혹에서 벗어날 리가 없다.

주거니 받거니 재정 퍼주기 포퓰리즘이 이어지면 나라 살림 파탄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우리가 포퓰리즘을 엄중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때 국민들에게 일괄 지급한 현금은 의도했던 경제 살리기에 별 보탬이 안됐다는 게 사후 평가다.
 
당시 나왔던 “대통령 덕분에 한우 고기 한번 먹었다” “비싼 보리 굴비도 먹어 봤다”는 칭송인지 비아냥인지를 우리는 들었다.
 
1인당 25만원, 재정 소요 13조원이 아깝고 많아서가 아니다. 포퓰리즘 중독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목이 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건전 재정’을 강조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지난 총선 즈음해서 민생투어다 뭐다 하면서 재정 살포형 약속을 쏟아내면서 매표(買票)에 열중했다.
 
실망스런 모습이다. 건전 재정 정책 하나만이라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기를 바랬는데 변질될까 걱정이다.
 
전 국민에게 얼마씩을 일괄 지급하는 보편복지냐, 어려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지급하는 선택적 복지냐는 쉽지 않은 선택이겠으나 신중한 선택이 절실하다.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국민 의견을 수렴해 가며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에게만 맡길 사안이 아니다. 각계 전문가와 국민, 세대별 계층별 참여하에 결정할 일이다.
 
25만원 ‘국민 대토론회’ 개최를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군복(軍服)이 나라를 휘어잡던 전두환 정권 시절 얘기다.
 
예산 주무 부처이던 경제기획원 청사 복도에서 별 한 개와 두 개 달린 장성 두명과 예산 주무 국장이 멱살 잡기 일보 직전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때는 예산 편성 시기. 국방부 예산 더 달라는 것이고, 어렵다는 다툼 끝에 이처럼 험악한 상황에 까지 이른 것이다.
 
당시 상황에선 군 장성에 이처럼 맞서 싸운다는 건 상상키 어려웠다. 나라 살림을 책임진 예산실 국장의 ‘무모’한 뱃장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아도 그 국장의 ‘소신’은 ‘애국’이었다. 엊그제 ‘기획재정부 출신 국회의원들이 더 앞장서서 재정 포퓰리즘 성격의 입법에 열을 올린다’는 기사를 보면서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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