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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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배터리 화재는 진화가 어렵다. 리튬 전지에 불이 붙으면 배터리 셀이 연속 폭발하고 물을 뿌리면 더 폭발해 물이나 이산화탄소 살포 등으로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섭씨 1천도 이상 온도가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고 내부에서 열이 계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 진화된 것 같더라도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화성 배터리 공장 발화 당시에도 직원이 달려와 분말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화기를 발화 지점에 뿌렸지만 배터리에서 나온 흰 연기가 공장을 삼키는 데는 불과 1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화재의 유형에 따라 소화기의 종류가 달라야 하는데 직원이 사용한 소화기는 금속 화재 진화용이 아닌 일반 화재 진화용 분말 소화기였기 때문이다. 화성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도 방화선만 구축한 채 4시간 가까이 불이 저절로 꺼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리튬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조울증 치료제나 윤활제, 강화유리 등을 제작하는데 주로 사용됐다. 1929년 대공황 직전 츨시된 리튬 첨가 탄산음료 세븐업(7UP)은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조울증을 앓게 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들어 휴대전화와 노트북 보편화로 고효율 배터리가 필요해지면서 신데렐라로 떠 올랐다. 리튬은 가볍고 반응성이 뛰어나며 전기전도도가 높다는 이점으로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에너지원으로 부상, ‘하얀 석유’로 불리고 있다.
리튬 배터리는 1차, 2차 전지로 나뉜다. 1차 전지는 전력·수도·가스계량기, 전자저울, 자동차 키, 소방감지기, 소형 가전제품 등에 사용된다. 군부대에선 무전기 전지로 많이 쓰인다. 2차 전지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폰, 노트북이나 이동수단인 전기차,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에 들어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충전해서 쓸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1차 전지는 한 번 쓰면 재사용이 불가능한데 반해 2차 전지는 충전해서 다시 쓸 수 있다. 1차 전지는 재사용할 수 없지만 잘 만들면 최대 10년까지도 사용이 가능하다.
1차, 2차 배터리 모두 화재에 취약하다. 오래 사용하거나 과충전하면 열이 나고 열이나 습기에 취약해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외부 충격이나 물리적 변형 시에도 불이 날 수 있다고 한다. 비행기 탑승 시 노트북을 별도로 체크하고, 수하물에 싣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금속이나 플라스틱 박스 속에 밀폐돼 차체 밑 깊숙한 곳에 위치해 외부에서 소화기로 끄기가 어렵다. 차량 내부와 격리돼 있다 보니 주행 중 불이 나도 재빨리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지금으로서는 차에 연기가 나거나 불꽃이 튀기 시작하면 가능한 한 빨리 아무도 없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사고 이후 3분 이내에 탈출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데이터가 있다.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된 아파트나 충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꺼지지 않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특히 아파트 주차장처럼 지하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문제는 무척 심각하다. 화재 시 소방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또한 과거엔 노트북이나 휴대폰에 들어간 전지가 본체와 분리됐지만 지금은 내장돼 있어서 배터리를 따로 뺄 수 없다. 그러니 전자기기를 통째로 버려야 한다. 이를 함부로 버리면 쓰레기 매립장에서 폭발할 위험이 있다.
문제는 리튬을 소재로 하는 배터리가 실생활 곳곳에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리튬 화재는 이번 참사가 빚어지기 전에도 빈발했다. 2년 전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초래한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도 지하 전기실에 보관 중이던 배터리 한 곳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발생했다. 당시에도 자동 소화 설비가 불길을 잡지 못했고, 소방 인력이 8시간여 만에 불을 껐다.
소방 관련 학계에서는 리튬 제조시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수차례 촉구했고 감사원도 2020년에 금속 화재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리튬 전지에 대한 별도 대응 매뉴얼이나 안전기준조차 없는 상태다. 심지어 리튬 금속 자체는 위험물로 분류돼 있지만 리튬 1차전지는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다.
정부는 이제서야 전국 전지 제조 공장을 대상으로 긴급 화재 안전 조사를 벌이는 한편, ‘배터리산업 현장 안전점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겠다고 한다. 비록 뒤늦었지만 리튬 전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인증 기준과 재활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 자동 소화 시스템 구축 의무화 같은 대응 체계도 서둘러 만들어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