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정부가 25년 만에 상속세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올해 세법개정안을 내놓았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공제를 1인당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10배 높이며 기업승계 지원을 위해 최대주주 보유주식에 적용되는 20% 할증을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부동산 세제는 건드리지 않았고 상속세 대신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외됐다.
 
이 개정안이 빛을 보려면 여소야대인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개정안이 발표되자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상당수 시민단체가 일제히 ‘부자감세“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물론 야당도 중산층의 피해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으로 사료되나 세법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가 이번에 강경하게 상속세 완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낡고 징벌적이며 불합리한 과세로 상당수 개인과 기업들이 고통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1999년부터 초장기간 그대로 유지돼 왔다. 2000년 1428만 원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지난해 4725만 원으로 3배 넘게 뛰었고 주택가격을 비롯한 물가도 그동안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상속세 공제 한도와 최고세율은 그대로다. 덩치는 커졌는데 옷은 그대로이니 이젠 서울에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 한 채만 갖고 있어도 상속세를 내야 할 처지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재산을 정리해 상속세가 없는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지로 빠져나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앞다투어 해외로 나가고 있다.

이들이 생존을 위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이른바 ‘한국 엑소더스’ 가속화를 나무랄 수만 없다. 하지만 이들이 해외로 떠나면 국내 투자와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비가 줄고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도 떨어진다. ‘한국 엑소더스’는 국내에서 걷을 수 있는 세원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의미도 된다. 영국의 컨설팅업체는 올해 한국의 고액 자산가 순유출이 120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국세·지방세 세목 25개 중 20개에서 이중과세 문제가 크다면서 공장을 하나 지으려 해도 종부세와 도시지역분 재산세, 지역자원시설세, 지방교육세 등 국세와 지방세를 중복해서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들은 세제 혜택까지 줘가며 기업과 개인을 유치하는데 우리의 조세 정책은 되레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의 조세 정책은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67개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법인이 국내로 배당하거나 현지에 투자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갖고 있는 유보금(재투자수익수입액)이 902억 달러 (128조 원)나 된다. 이는 역대 최고치다. 해외법인으로부터 들어오는 배당금은 해당 기업의 소득과 합산해 법인세를 책정하도록 되어 있어 일부 세액공제가 있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유보금으로 해외에 놓아두고 있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 기업의 해외유보금을 국내로 끌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 멕시코 등 6개국을 제외한 32개국이 해외 배당소득에 대한 과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2009년과 2018년 각각 해외 배당소득을 비과세로 전환한 일본과 미국의 경우 해외유보금의 95%, 78%가 각각 국내로 환류됐다고 한다.
 
세율 인하에 방점을 찍은 세법 개정은 세수 감소를 동반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안으로 인한 세수 감소분이 내년부터 5년간 4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22년에 법인세율 인하와 다주택자 중과 완화 등 부동산세 세제 합리화를 단행하는 등 올해까지 3년간 줄곤 ‘감세’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번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한다고 가정할 경우 5년 누적 감세 규모가 81조 원에 이른다.
 
문제는 '세수 펑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56조 4천억 원의 세수 결손을 낸데 이어 올해도 5월까지 9조 원 이상의 국세 수입이 감소, 2년 연속 ‘마이너스’가 예고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세 기조가 이어지면 재정 기반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의 '장밋빛' 전망처럼 상속세 부담을 덜게 될 기업들이 내년 이후 기업 가치를 키워 수익을 더 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합리한 상속세제의 개선을 위해 감세안 제출이 불가피했다면 세입기반을 확충할 대안도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고 본다. 예산 부족 속에서도 흥청망청 예산을 낭비하는 분야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정부안을 놓고 소모전만 펼칠게 아니라 징벌적이고 불합리한 과세를 바로잡으면서 재정 악화를 막을 묘안을 짜내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지층 눈치만 보면서 낡은 세법 개정에 어깃장을 놓는다면 상당수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이고 명실상부한 선진국 진입도 요원해질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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