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진 정책사회팀 기자
▲ 김유진 정책사회팀 기자
“생명을 살리는 좋은 일을 하고 좋은 곳에 갔을 테니, 거기서는 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

뇌사상태에 빠진 후 5명에게 장기기증을 통해 새 삶을 선물한 故유동은씨의 어머니는 딸에게 이 같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장기기증 사례도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장기기증 현실은 암울하기만 한 상황이다.

현재 한국의 장기기증자 수는 점차 줄어들는 실정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국내 뇌사 장기기증자는 지난 2014년 446명에서 2016년 573명으로 늘었으나 이후 꾸준히 감소해 2021년에는 442명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지난해 5월 열린 ‘생명나눔 기증자 기념행사’에서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의학 기술은 세계적이지만 뇌사자 장기기증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우리 모두가 장기이식 수혜를 받을 잠재적 존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옵트 아웃(opt-out) 제도’ 시행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옵트 아웃 제도는 개인이 이전에 장기기증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적이 없을 경우 장기기증 동의자로 판단해, 사망 후에 장기 적출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현재 스페인과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 이를 시행 중에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전에 장기기증에 동의한 사망자의 장기만을 적출할 수 있게 하는 ‘옵트 인(opt-in) 제도’를 택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옵트 아웃 제도를 택한 스페인과 영국의 뇌사 장기기증률은 인구 100만명 당 각각 46.03명, 21.08명이었으나 한국의 경우는 7.88명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의 장기기증 참여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이 원인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는 한국도 참여 의지에 있어서는 낮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국내 ‘장기·인체조직기증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장기·인체조직 기증 의사가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 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한 비율은 14.6%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본인이 의사를 밝히지 않더라도 잠재적 장기기증 대상자가 되는 옵트 아웃과 달리 직접 의사를 밝혀 참여해야 하는 옵트 인 제도가 장기기증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한국에서도 앞서 옵트 아웃 제도와 관련한 논의가 시도된 바 있으나 현실로 이어지지는 못한 상황이다.
 
지난 2018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옵트아웃제도 도입 관련 질의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며 도입이 쉽지 않음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장기기증자의 시신 처리를 유가족에게 떠넘긴 병원에 대한 언론 보도가 쏟아지면서 장기기증 서약 취소자들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오른 1만명에 달하는 등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에 장기기증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부천성모병원을 비롯한 여러 주요 병원에서는 생명나눔 캠페인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한국장기기증협회에서는 관련 포스터를 꾸준히 제작해오는 등의 노력을 이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인식 제고를 위해선 단순히 민간 차원에서만의 노력을 넘어 정부의 지원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옵트 아웃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스페인 정부 조차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협업해 장기기증자에게 감사 표시가 담긴 소포를 보내는 등의 캠페인을 펼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홍보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부나 정치권 차원에서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가 아직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결국 장기기증 인식 개선의 문제는 정부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물론 장기 기증자에 대한 예우 개선 문제를 비롯해 대외적 이미지 제고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지만, 옵트 아웃 제도 도입에 관한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도 이뤄져야 할 때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장기기증 문제를 바라 봐야될 것이다.
 
장기기증이 필요한 사람들은 지금도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 기적의 한 순간을 꿈꾸며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그들의 기도를 무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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