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팔아 상속세 내라는 야당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내 집 마련은 무주택 가구의 지대한 관심사다. 사람마다 인생 목표가 다르고 관심사도 다양하겠지만 주거 안정은 생활의 기본으로 꼽힌다. 그래도 살 만하다는 중산층 가구들은 보통 가장이 직장에 한창 근무할 때 그동안 모은 돈과 대출을 더해 어렵게 집을 마련하고 빚을 갚는 일에 여력을 쏟는다. 특별히 물려받은 게 없다면 대부분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 후 연금과 기타 소득 등을 합해 빠듯하게 살면서도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사는 곳을 물려줘 덜 고생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기대도 과도한 상속세에 막혀 차질을 빚기 쉽다. 상속세제의 핵심인 공제한도가 28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서울 강·남북을 가리지 않고 중산층 주택보유자들은 상당수 세금을 물어야 한다. 그동안 물가는 2배로, 1인당 소득은 3.8배로 올랐지만 여전히 상속 재산에 대해 일괄공제 5억원과 배우자공제 5억원을 합해 10억원 공제받는 데 그친다. 일괄공제 대신 기초공제 3억원에 자녀 1인당 5000만원씩 공제받을 수도 있는데 자녀가 5명 이상이어야 실익이 있다. 지난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 실패가 겹쳐 서울 아파트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상속세 부과 대상이 중산층까지 늘었다. 실제로는 배우자의 법정 상속분에 한도가 따로 있고 배우자 상속분은 자녀에 비해 50% 많기 때문에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상속하면 세금 계산이 달라질 수는 있다.
 
국세청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상속세 신고 인원 중 상속재산 10억원 미만이 4700여명으로 전체 신고의 25.8%에 달했다. 상속세 과세 대상은 2020년 1만명을 넘어선 이후 3년 만에 2배로 늘었고 결정세액도 12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상속세 납부자들이 물려받은 재산은 토지·건물 등 부동산이 대부분이었고 이 중 아파트 등 건물이 40%를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020년 처음 10억원을 넘어선 이후 최근 15억원 안팎까지 보인다.
 
마땅한 대책이 없어 집을 팔아 규모를 줄여 상속 절차를 밟으면 적지 않은 상속세 외에도 거래에 따른 수수료와 새로 들어갈 곳의 등록·취득세 등 거래세를 따로 부담해야 한다. 자녀들을 위해 작은 집을 따로 준비했던 가구라면 양도소득세까지 물어야 한다. 그동안 근검절약으로 집 마련하고 어렵게 노후를 대비했던 가정에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민주화의 상징처럼 남아 있던 서울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가 얼마 전 100억원대에 팔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DJ 정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사저를 기념관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만류가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전 민주당 의원은 세무서로부터 상속세 납부 독촉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매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비해 턱 없이 높다. 미국은 우리 돈으로 환산해 200억원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가 아니라면 상속세를 걱정할 일이 없고 스웨덴을 비롯한 10여개 OECD 회원국들은 상속세가 투자와 일자리 감소를 초래한다며 아예 폐지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상속세 자녀 공제한도를 1인당 5억원으로 늘리고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상속세가 너무 높아 국내 재산을 정리해 해외로 이주하거나 진출하는 개인과 기업도 적지 않다.
 
민주, 자녀공제 5억원도 과하다 반대
 
그러나 입법권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한마디로 세법 개정안을 걷어찼다. 서민을 외면하고 대기업과 재산가만을 위한다는 ‘부자 감세’ 딱지를 붙였다. 그동안 민주당 내에서도 상속세제를 개정해 중산층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그 한마디에 자취를 감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위원들은 “정부 세법 개정안은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목표일 뿐”이라는 강경한 입장문을 냈다.
 
현행 세제의 허점을 익히 알고 있는 민주당이지만 ‘부자 감세’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기세를 잡고 빈부 갈라치기로 여론을 굳히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공제한도 상향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 두었다. 그나마 중산층 반발을 의식한 면피용에 발언으로 들린다. 자녀 공제를 5억원까지 올린 것은 과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봉급생활자나 은퇴자 등 우리 사회의 버팀목인 중산층까지 일단 ‘부자 감세’라는 호통으로 입막음해 놓고 추이를 보겠다는 식이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윤석열 정부가 여전히 낮은 지지율을 면치 못하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은 오히려 국민의힘에 밀리는 추세를 보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따른 일시적 컨벤션 효과라는 분석은 아무래도 좀 억지스럽게 들린다. 거친 폭로와 갈등으로 친윤-친한 논란이 불붙은 여당 전당대회를 곱게 보아줄 민심은 찾기 어려웠다. 그보다는 다수 의석을 앞세워 탄핵과 특검 정국으로 몰아가는 야당에 대해 중도층 여론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중산층까지 세금을 중과하려는 야당의 과도한 이념 성향에 등을 돌렸다는 판단이다. 민주당이 아무리 열성 당원들의 요란한 지지로 기세를 올린다 해도 중도 확장에 실패하면 그 결말은 뻔하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