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주필
postmaster@todaykorea.co.kr
기자페이지
정부가 2010년 보현산 다목적댐 착공 이후 중단됐던 댐 건설 사업의 재개를 공식 선언하자 환경단체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홍수를 막기 위해 무조건 댐을 건설한다는 발상이 엣날 식이라고 전제하고 이는 그동안 국가 물관리 정책의 큰 방향으로 자리잡혀온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기조를 뒤흔드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어 미국이나 유럽에서 기존의 댐을 허물고 자연기반 해법을 도입하여 강의 생태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지는 것과 비교할 때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환경단체들은 댐 건설이 생태계 보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하면서 예측이 어려운 폭우 상황에서 제방의 관리 부실 등으로 더 끔찍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지금 시작해도 10여년 정도가 소요되는 만큼 최근의 기후 위기를 감안할 때 댐 건설을 더 이상 늦출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진작 신규 댐을 추진했더라면 2022년 태풍 '힌남노'나 2022∼2023년 남부지방을 덮친 가뭄 등 극한 기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홍수 방어능력을 키우고 지역주민을 위한 생·공용수 공급을 늘리기 위해 댐 신설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17개 지자체는 지난해 6월 이후 21곳에 댐을 신설해달라고 신청했다.
세계는 지구온난화로 수년 전부터 기상이변을 경험하고 있다. 이상기후의 일상화로 우리나라도 올해 장마철 한 달 동안의 강수량이 평년 치를 훨씬 웃돌았다.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도 속출했다. 최근 3년간 극한 호우 등에 따른 피해액은 1조 6000억 원이 넘었고 인명 피해도 85명에 이른다. 올해만 해도 전국 15개 시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극심해진 가뭄도 문제다. 재작년 남부지역에서는 기상관측 사상 최장인 227일간의 가뭄으로 산업용수가 부족해 국가산업단지의 가동 중단이 초읽기에 들어간 적이 있다. 2022년 한 해에만 생활·공업용수 등의 부족을 알리는 가뭄 예보·경보가 1256회나 발령됐다.
감사원이 공개한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더욱 실감난다. 이대로 뒀다가는 2040년쯤이면 한강 상류 댐들이 대거 범람할 수 있으며, 수도권 다리들도 물 넘침 사고로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치수 대책도 바뀌어야 한다. 이상기후도 문제지만 날로 늘어나는 개인의 물 소비 증가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앞으로 등장할 국가전략산업의 물 수요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토목 사업을 죄악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국가 주도 대규모 댐 건설 중단’을 선언해 버렸다. 이후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물관리 정책은 사실상 실종됐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세계적인 희귀종이 서식하는 생물자원을 보호하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기후 위기 속에서 무방비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결국 선택은 이득이 더 큰 편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부는 앞으로 타당성 조사와 기본 계획 수립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소지를 미리 파악하고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필요시 환경단체들과도 폭넓게 소통해야 한다. 과거 대형 댐을 지을 때는 수몰되는 땅만을 보상해 주는데 그쳤다. 그러나 국가 시책이라는 명분아래 이렇게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댐 건설로 수몰되거나 다른 지역과 단절되는 지역에 대해서도 적절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환경적인 측면도 보다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경북 영주댐은 주변 오염원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강행한 탓에 내성천 수질이 급속히 악화하고 담수가 시작되기도 전에 댐에 녹조가 가득 차 2016년 완공하고도 7년간 놀리다 지난해에야 간신히 준공 허가가 났다.
댐 용량도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이번에 후보지로 결정된 댐들은 한 번에 80~200㎜ 정도의 폭우가 내리더라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용량으로 준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 비의 양은 불과 한두 시간 만에 내릴 수 있다. 댐 용량을 초과한 비가 내리면 수문을 열어야 하고 이는 하류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중부지방 폭우때 월류한 괴산댐이 대표적 사례다. 담수 능력 등을 과학적으로 판단, 안전 기준을 더욱 강화해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홍수 방어용 댐이 오히려 홍수 피해를 키우는 일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