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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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총리대신 이완용으로 인해 1910년 8월 22일 강제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국권을 강탈당했고, ‘내지(內·일본)와 조선(鮮)은 한 몸’이라는 표어 아래 장장 35년간의 식민 지배가 시작됐다.
그러나 난세에 영웅이 나듯, 18,018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권 회복을 위한 한 뜻을 향해 여정을 떠났다.
누구는 한 손에 도시락 폭탄으로, 또 어떤 누구는 아우내 장터에서 한 손으로 태극기를 나눠주며 저항의 상징이 돼 항거했다.
이들 대부분은 일본 순사들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이는 조국을 잃은 고통에 비하면 그리 아픈 축에도 끼지 못했던 듯하다.
실제로 남승룡은 지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 출전해 동메달을 손에 거머쥐었지만, 메달의 색 때문이 아닌 1위에게만 주어졌던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리고 싶었기에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을 부러워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주권 회복이라는 열망에 기인한 각고의 희생으로 일제에게서 독립한 지 어언 7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이 염원했던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다르게 변모했다.
특히 과거 보수단체 강연에서 “1945년 8월15일이 광복절이 아니”라고 실언한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직에 취임하는 등의 다소 의아한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 전시 공간에 ‘강제성’ 표현이 담기지 않은 것이 알려지면서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둔 대한민국 정계는 끊임없는 난투전이 한창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 박물관 2층 한 구획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조건 등을 설명하고 관련 사료들을 전시하는 공간이 자리했으나 그뿐일 뿐, 한국 정부의 요구 사항은 거부한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명부 제공과 전시시설에 ‘강제’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담아달라는 우리 측 요구를 거절하면서 야권이 공격할 명분을 줬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옥섬’으로 불릴 만큼 처참했던 강제노동 현장인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 관해 제기된 의혹을 밝힐 책무가 국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독립기념관장 임명의 건을 두고 “우리 민족을 일본의 신민이라고 표현한 뉴라이트 인사”라며 “식민 지배를 미화한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취소해야 마땅하다”고 대통령실을 직격했다.
이어 “친일을 넘어 ‘종일주의자’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것은 독립기념관의 설립 목적과 존재 이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라며 거듭 비판의 수위를 올렸다.
광복회장 또한 ‘용산에 밀정이 있는 것 아니냐’며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는 광복절 행사를 보이콧하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 같은 ‘탁상공론’에 여야가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8월 임시국회에서도 주요 민생 법안 처리는 요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 얽매인 입법자들로 인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하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에 부양책을 고민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들어서기만 하면 언제나 그렇듯 정치면 헤드라인 기사만 놓고 서로 옥신각신이다.
이분법적 이념 논쟁에 매몰돼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운 폭염을 지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우중충한 장마를 겪었다.
‘생산성 제로(0)’라는 질타마저 받은 22대 국회는 뒤늦게나마 민생 정책을 논의할 ‘여야정 협의체’에 공감하고 실무 협의에 착수했지만, 여론의 눈총은 따갑기만 하다.
거듭된 ‘눈 가리고 아웅’식의 공전에 속아온 국민들은 더 이상 여당도 야당도 아닌 자신이 먹고 살길만을 찾아서 배회 중이다.
저만의 방식대로 의거(義擧)하다 때로는 총검에, 때로는 몽둥이로 인해 저 발밑에 잠들어 있는 18,018명의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은 순간으로부터 79년이 흘렀다.
더 이상 일제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조준해 들이민 총검의 칼날을 언제쯤 거둬 그들뿐만 아닌 우리도 웃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