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디즈니플러스가 최근 국내에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무빙’ 이후 마땅한 오리지널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던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는 모바일인덱스 기준 지난해 9월 433만명에서 지난 7월 249만명으로 급감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디즈니플러스가 선택한 것은 신작이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디즈니플러스가 이 같은 상황 타개를 위해 선택한 박훈정 감독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영화 ‘신세계’를 연출하며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박 감독은 ‘마녀’ 시리즈로 흥행 성적을 이어가는 듯 했지만 ‘낙원의 밤’은 극장 개봉에 건너뛰고 OTT로 직행했으며 가장 최근인 2023년 개봉한 ‘귀공자’도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하며 흥행 부진을 겪었다.
 
또한 작품성에 있어서도 흥행을 기록한 ‘마녀’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이 국내 평단 및 리뷰 사이트 등지에서 의문 부호가 붙으며 차기작에서는 반전의 계기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 속 지난 14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폭군’은 디즈니에게도, 박훈정 감독에게도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우선 폭군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마녀’ 시리즈의 세계관을 가져온 스핀오프 시리즈라는 점이다.
 
그간 한국 콘텐츠들이 하나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방면으로 활용한 경우는 많았지만 디즈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와 같이 하나의 세계관을 두고 드라마, 영화 등이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디즈니의 강점인 세계관 구축 능력과 박훈정 감독이 그간 쌓아온 ‘마녀’ 세계관이 시너지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기본적으로 마녀 시리즈는 초인적 힘을 지닌 군인을 양성하려는 국가의 계획 속에서, 실험체로 키워진 소녀들이 거대한 힘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로 제작된 ‘마녀’와 ‘마녀 Part2. The Other One’은 초인들의 액션을 위주로 다룬 장르물에 가까웠다.
 
반면 같은 세계관을 다룬 드라마 ‘폭군’은 초인이란 설정과 액션씬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첩보물에 가까운 느낌을 풍긴다.
 
‘폭군’은 한국이 비밀리에 준비 중인 초인 군인 양성 프로젝트인 ‘폭군 프로그램’의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최 국장(김선호 분), 국정원, 미국 정보국을 비롯해 복수를 위해 이를 쫓는 주인공 채자경(조윤수 분)까지 서로를 추격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중에서도 언급되지만 ‘폭군 프로그램’은 한 국가의 비밀 전략 자산이란 점에서 과거 비밀리에 핵개발을 다룬 첩보물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전 작에서는 1편의 주인공 구자윤(김다미 분)과 2편의 주인공 소녀(신시아 분)가 선역을 맡아 악과 대항하는 구조를 띤 것과 달리 ‘폭군’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채 캐릭터들이 각자의 목적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도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시리즈의 클라이막스에 이를 때까지 ‘초인’이란 설정은 언급될지언정 액션 구성에 있어서는 초인적 능력이 아닌 순수 사람의 액션이 이어져 장르적인 면에서 전작들과 차별화를 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첩보물이란 장르적 특징을 살리려는 시도는 전작들의 단점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박훈정 감독은 영화 ‘마녀’ 시리즈를 통해 기존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초인 액션물을 보여주는데는 성공했지만 세계관을 소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영상 콘텐츠만이 할 수 있는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대사를 통한 ‘설명하기’ 방식으로 세계관을 설명했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이어지는 극 중 인물들의 대사로만 이어지는 세계관 설명은, 관객들로 하여금 도리어 길을 잃고 집중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첩보물의 긴장감과 미스터리함을 살리기 위해, 극 중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최 국장 캐릭터부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설령 대사로 설명이 이어지는 부분에 있어서 갑작스레 설명을 늘어놓는 식이 아닌, 정보 요원들 간의 대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캐릭터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각자만의 매력과 이를 해석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박훈정 감독과 전작 ‘귀공자’에서 호흡을 맞추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김선호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도 기존의 선한 이미지가 아닌 서늘하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최 국장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한국의 폭군 프로그램 개발을 막기 위해 해외에서 파견된 요원 ‘폴’을 연기한 김강우와 킬러인 ‘임상’ 또한 차승원 배우를 만나 특유의 능글맞음과 비밀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또한 김다미와 신시아에 이어 ‘마녀’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낙점 받은 조윤수 배우도 다중인격 캐릭터인 ‘채자경’을 이질감 없이 연기해 시리즈의 정체성을 이어받았다.
 
다만, ‘폭군’은 마녀 시리즈만의 독창성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전작인 영화들에 비해 약하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폭군 프로그램’을 통한 능력의 설정은 마블의 ‘베놈’을 떠올리게 하며 또한 빛에 대한 약점이 있다는 점 또한 그리 새로운 설정은 아니었다.
 
또한 ‘폭군’에서 언급되거나 다뤄진 설정들이 이번 작 안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점 또한 아쉬움을 자아냈다.
 
채자경 캐릭터의 다중인격 적인 특성도 몇몇 대사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서사 흐름에 있어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으며 앞서 언급한 폭군 프로그램의 빛에 대한 약점도 후속작에 대한 암시를 남기는데 그쳤다.
 
해당 작품에서 등장한 설정을 모두 활용하지 못하고 후속작으로 그 역할을 넘겼다는 점에서는 이전 영화 ‘마녀’ 시리즈가 보여준 단점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폭군’이 흥행을 기록하고 후속작 제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이 같은 단점이 오히려 기회로 사용될 수 있어 번복의 여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폭군’은 공개 이후 3일 연속 한국 디즈니플러스 콘텐츠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홍콩,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의 국가에서 상위 5위 안에 이름을 올리며 일단은 초반 분위기 몰이에는 성공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며 디즈니와 박훈정 감독에게 반전의 계기가 되어 ‘마녀’ 세계관이 글로벌 인기 IP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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