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장을 보기 위해 마트나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표정이 어둡다. 차례상에 올릴 생선과 채소 등 오르지 않은 품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추석물가를 고물가 이전인 2021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서민들의 입에서는 "장보기가 겁난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와 같은 민생고를 한탄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올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은 평균 20만 9494원으로 지난해보다 1.6%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 6일 전국 23개 지역 전통시장 16곳과 대형유통업체 34곳을 대상으로 4인 가족 기준, 24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전년 대비 6.8%나 오른 2022년과 비교했을 때 소폭 오른 수준이다. 그러나 전년보다 4.9% 감소한 지난해와 비교하면 그렇치 않다.
 
정부는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년 5개월 만에 최저인 2%까지 둔화된데다 배추, 무, 사과, 배 등 20대 성수품 비축물량을 을 역대 최대인 17만t이나 시장에 풀기로 해 물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가 목표로 삼은 3년 전인 2021년과 올해 추석 성수품 물가를 비교해 볼 때 무는 80%, 배추는 35% 이상 비싸다. 무척 저렴해진 사과도 3년 전보다는 4% 이상 오른 상태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오징어 등도 마찬가지로 줄줄이 상승했다, 다만 소고기와 감자, 배 등 일부 성수품 가격이 떨어졌을 뿐이다.
 
정부의 기대처럼 기존에 크게 올랐던 사과 등 과일 값이 작황 호조와 출하량 증가로 최근들어 내림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민들은 생각보다 높은 물가 수준에 “체감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가격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예년에 비하면 여전히 비싼데다 싼 것들은 제수용으로 쓰기가 망설여지는 이른바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상당수에 달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날 생각에 설렘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표정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수산물과 채소류 값이 폭등, 친숙한 참조기 대신에 값싼 백조기나 부세로 대체하는가 하면 과일도 필요한 만큼만 낱개로 구매하는 시민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추석 선물세트 코너에도 식용유, 김, 사과 등 비교적 저렴한 선물세트가 배치된 곳에 사람들이 몰린다.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5만 원 이하 선물세트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우의 경우도 과거에는 가장 잘 나가는 품목이 20만~30만원 선물세트였지만 이젠 15만~20만원대가 대세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건 기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마트의 올 추석 사전예약 매출(8월2일~9월3일)도 3만원 대 사과 세트가 33% 신장했고 사전기획으로 가격을 동결한 6만원 대 옥돔·갈치 등 선어 세트 매출이 105%나 증가했다. 홈플러스에서도 사전예약(7월25일~8월25일) 기간에 3만원 대 건강 선물세트 매출이 283%나 폭증했다. 롯데마트도 사전예약(8월1일~9월2일) 기간 중 3만원 미만의 가성비 선물세트 매출이 전년 대비 50%가량 급증했다.
 
이 같은 시민과 기업들이 짠물 소비가 두드러지면서 상인들은 “역대 최악의 경기”라고 울상을 짓는다. 시장에서 가장 긴 줄이 늘어선 곳이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장이다 보니 상인들의 입에서 “이젠 명절 대목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면서 냉소적인 푸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 2분기(4~6월) 가구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2년 전보다 14만1000원이나 줄었다. 특히 벌어들인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은 적자가구 비율이 네 집 중 한 집꼴로 3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2분기 명목 근로소득은 8.3%가 늘어났지만, 소득 하위 20%는 오히려 7.5%가 줄었다. 그러다 보니 한계 상황에 몰린 서민들이 급전을 끌어다 쓰면서 카드론, 보험약관대출 같은 ‘불황형 대출’이 역대 급으로 늘고 있다.
 
가을이 됐는데도 한여름 뺨치는 늦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들이 유달리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다소나마 위안을 가져다주는 추석 명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비싼 먹거리 물가로 인해 조상의 은덕을 기리를 차례상 차리기조차 버거우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축제가 되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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