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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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부는 의료대란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의사단체는 작금의 상황이 정부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이나 환자를 위해 옳은 일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단순 자존심 싸움으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격돌로 인해서 생겨난 파편이 국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추석 당일인 지난 17일 부산 영도구에서 의식 장애 증상을 보이던 30대 여성은 응급상황에 빠져 병원을 찾아 헤메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날 소방대원들은 응급치료 가능 여부를 묻는 통화를 총 92차례 돌렸다.
또 지난 27일에는 천안에서 세제를 물로 착각해 삼킨 8살 초등학생이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서 80km가 떨어진 대전으로 이송돼 치료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28일에는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서 소아당뇨 환자 8살 초등학생이 고혈당 증세로 인슐린 투여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구급대는 충남과 충북, 세종, 대전지역 병원 10여 곳에 이송을 요청했으나, 소아 전문의와 소아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어린 초등학생들이 치료받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고, 30대 여성이 생을 마감했음에도 의료계와 정부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하며 지금까지의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은 3주 전부터 논의됐지만, 돌연 국민의힘 일부 지도부는 돌연 협의체 출범이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3주간 논의되어 오던 협의체 출범과 관련해 한동훈 대표가 주도권을 가지고 움직이자 당 지도부가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의료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누가 협의체에 참여할지 정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로 인해 사망률 증가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공립대학병원으로부터 올해 2월~8월 수술 예약 및 취소 현황을 제출받은 결과 전공의 이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부터 수술 취소가 급격히 늘었고, 3월부터는 수술 예약 건수가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특히 해당 기간 진료 결과 사망환자 수도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월 의료기관 전체 진료 인원 만 명당 사망환자 수는 6.9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0.5명 증가한 수치고, 3월 진료 인원은 53만여 명이 줄어들었음에도 사망자 수는 1천125명 늘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자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응급실에 공보의와 군의관을 투입하는 거였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 같은 조치는 안 그래도 취약한 지방의 풀뿌리 의료를 송두리째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지난 9월 경남도와 도내 의료계 등에 따르면, 경남에서는 전공의 이탈로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등에 17명의 공보의를 파견했다. 이들은 도내 15개 시군에서 차출된 이들이다.
이에 공보의들이 근무하던 지역 보건지소는 텅 비어버렸고, 지역에 남은 다른 공보의들이 순회진료를 하면서 빈자리를 메워야만 했다. 의료공백을 메우고자 내린 결정이 또 다른 의료공백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정부는 최근 의사인력 공급의 공백을 막기 위해 의대 교육과정을 기존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4학년도 2학기 전국 40개 의대 재적생 1만9천374명 중에서 실제 학교에 출석한 학생은 단 2.8%에 불과하고, 8개 국립대에서 1학기와 2학기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은 무려 4천346명에 달한다.
이에 의대생들의 졸업 지연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기간 단축으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의대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을 비대면 수업으로 대체하는 등 오프라인 수업 비중을 낮추고 있는 상황인데, 기간까지 단축하면 의료 교육의 질이 심각히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비대위 위원장은 “현재 본과 4년 교육도 힘들어 이 과정들이 예과로 내려가고 있는 상황인데, 5년제 시도는 의대 교육과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다”라며 “정부가 추구하는 것이 허울 좋은 ‘더 많은 의사’인지, 국민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의사’인지 먼저 밝혀라”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의 말처럼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생명과 건강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실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의사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굴복이 아닌 의료계와 정부 양측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