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2019년의 기생충을 시작으로 2021년 오징어게임 등 2020년대의 한국콘텐츠는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내 극장가에서는 한국 영화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영화인들은 지난 3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영상산업센터에서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 토론회’를 열고 위기 타개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가 하면, 윤상현 CJ ENM 대표도 영화제 기간 부산을 찾아 “천만 영화를 배출했던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8월 영화 관객은 1178만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78만명이 줄어들며 극장 여름 성수기의 관객 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으며, 업계에서는 관객 수 감소가 영화 제작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중이다.
 
이 같은 위기상황 속 지난 6월 극장가에는 기존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단편 영화 ‘밤낚시’가 그 주인공이다.
 
현대자동차가 제작하고 문병곤 감독, 손석구 배우가 참여한 약 13분 분량의 영화 ‘밤낚시’는 주인공 로미오(손석구)가 한밤중 전기차 충전소에서 정체불명의 발광 생명체를 붙잡으려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다.
 
‘밤낚시’는 개봉 당시 관람료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시도를 통해 5주간 관객 약 4만6000명을 끌어 모으는 등 새 관람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봉 당시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30초 광고가 3초 숏츠로 소비되는 시대”라며 “시성비(시간 대비 효율) 있는 스낵 무비 콘셉트로 기획된 이번 작품이 영화계에 활력이 되고 고객들에게도 새로운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영화 ‘밤낚시’는 기존에는 국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단편이란 포맷을 통해 다른 숏폼 콘텐츠와의 경쟁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 산업의 불황 타개 방안에 있어 ‘단편’이 가져다주는 경쟁력은 단순 시성비 뿐만이 아니다. 단편은 기존 장편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독특한 아이디어가 선보여질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
 
이번 ‘밤낚시’의 경우에도 현대차의 ‘아이오닉 5’ 내 카메라로 장면들을 촬영했으며, 자동차 카메라만의 한정된 시야각이 주는 제한적인 화면 정보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연출을 선보였다.
 
주연인 손석구 배우도 시사회 자리에서 “자동차의 시선으로 담는 영화가 어떻게 표현될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며 “카메라라는 능동적인 개체를 고정하면서 온 제약이 오히려 전례 없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편집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긴장감의 조절 등을 통해 관객의 몰입감을 러닝타임 내내 붙잡으며 장르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에 28회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선정 국제 단편 경쟁 부문 ‘최고 편집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같은 단편 영화를 통한 아이디어로 주목을 받은 사례는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생의 이충현 감독은 지난 2015년 공개한 단편 영화 ‘몸 값’을 통해 충무로의 가장 핫한 기대주 중에 한명으로 떠올랐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콜’, ‘발레리나’ 등의 장편 연출까지 이어갔다.
 
특히 14분 분량이었던 ‘몸 값’은 OTT인 티빙과 만나 200분이 넘는 6부작 시리즈물로 재탄생하는 등 획기적인 단편 영화 한 편의 아이디어가 IP(지식재산권)의 확장까지 이어졌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국내에서 단편영화는 아직 주류 업계 내에 자리하고 있기 보단 신진 감독들의 영화계 입문 루트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OTT 등 기존 극장과는 다른 플랫폼을 단편 연출의 무대로 활용하려는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디스트릭트9’, ‘엘리시움’, ‘채피’ 등을 연출한 닐 블룸캠프 감독은 제작사 ‘오츠 스튜디오’를 세우고 자신만의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단편 영화로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해당 작품들에는 시고니 위버, 다코타 패닝 등 유명 배우들도 참여했으며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츠’ 등을 연출한 웨스 앤더슨 감독은 넷플릭스에 단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등 단편 4편을 공개했다.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러브, 데스+로봇’도 단편의 작품들을 모은 시리즈가 시즌3까지 공개되는 등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단편작품들의 상업적 가능성을 점쳐보려는 시도가 계속되다.
 
국내에서도 왓챠에서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배우가 감독으로 참여한 단편 모음 ‘언프레임드’를 공개한 바 있지만 해외에 비해 단편에 대한 메인스트림의 시도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단편이 가진 약한 상업성에 이전보다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현재처럼 극장 관객은 줄어들지만 필요한 제작비는 더욱 치솟는 상황에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마냥 손 놓고 다시 활기가 돌때까지 기다릴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장편에 대한 제작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단편이라는 포맷에 대한 상업성을, 혹은 잠재적인 IP(지식재산권), 아이디어에 대한 시험을 해보기에 최적의 시기가 되어줄 수도 있다.
 
이충현 감독은 앞서 언급한 단편 ‘몸 값’을 제작하는데 그의 사비 500만원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밤낚시’에 제작자로도 참여한 손석구 배우는 제작비에 대한 질문에 “일반적인 영화 제작비의 10분의 1 정도가 투입됐다”고 밝혔다.
 
이 같이 단편영화는 장편에 비해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하지 않더라도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콘텐츠 이용 행태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지금, 이전의 방식을 고집해서는 새 돌파구를 마련하기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단편은 극장 및 영화 산업에 새로운 해법 중 하나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 ‘밤낚시’는 그 가능성을 실제 현실로 옮긴 시작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있어 단순한 시도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이에 ‘밤낚시’로 촉발된 단편 영화에 대한 시도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기대하는 바이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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