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 줄이는 선도적 역할 필요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노인 우대용 교통카드를 받은 지 몇 년 됐지만 아직 낯선 느낌이 남아 있다. 가급적 출퇴근 시간대 이용을 피하려 하는데 가끔 승객이 많은 구간에 탑승할 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임승차로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지 노파심에 움츠러든다. 몇몇 동년배 친구들은 이런 느낌에 대해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 세금 잘 냈으니 경로 혜택을 당당히 받을 자격 있다”며 위축된 마음을 다잡으라 한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얹혀가는 듯한 ‘무임’이라는 용어가 마음 한편을 켕기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경로석에 앉은 분들이 가끔 눈치 없이 목청을 높여 대화하거나 휴대전화를 길게 사용해 승객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연세가 높아 가는귀먹었나보다 이해한다 해도 폐를 끼치는 건 분명하다.

‘노인의 달’ 10월 들어 서울 지하철 요금 추가 인상이 정부의 물가 억제 정책에 따라 내년으로 미뤄졌다는 소식과 함께 고령화 시대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이 다시 달아올랐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최근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고 일정 금액의 교통 이용권을 제공하는 방향의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이 대표는 무임승차 대신 ‘(연간) 12만원 선불형 교통카드’를 대안으로 제시한 적이 있다. 그는 “무임승차 비용이 대부분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부채로 쌓이고 있다”며 버스를 배제하고 지하철을 대상으로 한 현행 제도가 심각한 지역 간 공정성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지하철이 없는 지방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이동권에서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네티즌들은 “상대적으로 잘 사는 수도권 노인들은 무임승차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반면 소득이 낮은 지방 노인들은 혜택을 못 누리는 실정”이라며 지지를 보냈다.

65세 이상 무임승차가 도입된 것은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완전 개통한 1984년이다. 당시 65세 이상은 167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1%에 불과했지만 2022년 전체 인구 5163만명의 17.5%에 달했으며 2035년에는 3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도시철도는 매년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23년 단기 순손실이 5173억원이며 이 중 3663억원이 노인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라고 한다. 서울지하철의 누적적자는 이미 17조원을 넘어섰다.

여전히 찬반양론이 치열하고 세대 간 견해차가 두드러진 무임승차 논쟁을 몇몇 의원들이 내놓은 법률 개정안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노인 빈곤이 심각한 우리 현실에 비춰 복지혜택을 쉽게 줄이는 쪽으로 가기는 곤란할뿐더러 세대 간 대립이 워낙 첨예해 자칫 더 큰 갈등을 촉발할 위험을 안고 있다. 선불형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무임승차를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지난 2월 실시한 여론 조사는 찬성 47%, 반대 48%로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노인회 김호일 회장은 지하철은 노인 승객 여부와 무관하게 운행된다며 적자 요인을 방만한 경영에서 찾아야 한다고 개정안에 반대했다. 그는 지하철 이용으로 활동량이 늘어 연간 4000억원 노인 의료비를 절감할 정도인데 노인들이 연간 12만원 선불형 카드에 묶여 외출을 줄이게 되면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빈곤 노인층 위한 지원책 강구해야

노인 복지와 경제 활동, 여론 등에 비춰볼 때 무임승차를 선불형 교통카드로 간단히 바꾸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쟁을 청년층 중심의 개혁신당 개정안에 끌어들이면 되레 세대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막상 교통비 지원이 더욱 절실한 빈곤층 노인들은 생계를 위한 경제 활동까지 난관에 빠질 위험이 있다. 빈곤층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교통 대책을 별도로 강구해야 한다. 이를 감안해 실정에 맞게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원책을 다양화하고 재정 부담을 분산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얼마 전 대구시가 지하철 무상 이용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고 시내버스도 무상 이용토록 조례를 개정했고 서울의 일부 자치구는 최근 자체 예산을 들여 65세 이상 주민과 어린이 청소년 등에게 버스 교통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가 도입한 버스비 지원방안을 보면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인 지역 내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분기별로 6만원, 연간 24만원 한도에서 버스비를 제공하고 청소년에게 분기별 4만원, 어린이에게 2만원을 준다. 지하철 적자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문제로 정부와 서울시가 줄다리기하는 사이에 자치구가 나서 별도 지원방안을 시행했다. 거꾸로 정부와 광역, 기초자치단체가 역할을 분담하면 새로운 답을 마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강남구 주민에게만 지하철 무임승차에다 버스비 지원을 추가할 게 아니라 정부와 서울시 여론 수렴을 거쳐 지하철 대안을 마련하고 기초단체의 주민 지원책으로 이를 보완하는 해법이 요구된다.

지하철 무임승차의 대안은 싸움박질에 여념이 없는 여야 정치권 대신 노인단체연합회나 대한노인회 등 역량 있는 단체들이 나서 주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연만한 분들이 나서 먼저 양보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국민연금을 포함한 노인 부양 등 과제로 젊은 층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형편에 무임승차 논쟁까지 과열로 치달아 세대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할 우려가 없지 않다. 격변기에 나라를 지키고 성장을 이끌어 온 노병들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세대 갈등의 요인을 줄이는 역할에 나서주시길 기대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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