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훈 경제산업부 기자
▲ 김지훈 경제산업부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K-콘텐츠의 쾌거라고 하지만, 이보다 수위는 낮은 비슷한 내용의 게임은 성인도 이용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최근 ‘게임검열법’이라고 불리는 게임산업법 제32조2항3호에 대해 위헌을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유튜버 김성회씨가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게임물관리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쏟아낸 작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말이다.
 
김씨는 지난달 8일에도 210,751명의 청구서를 대표로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면서 “만약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PD가 드라마 PD가 아닌 게임 디렉터였다면, 그는 위대한 창작자가 아니라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실제 대한민국은 21세기 콘텐츠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세기 홍콩 누아르의 영화의 상징 주윤발이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자유일 것”이라며 “가끔은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과 같이 말이다.
 
지표상에서도 대한민국의 2022년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6.3% 증가한  약 18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호조세를 견인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는 게임이 꼽힌다. 게임은 전체 수출액의 67.8%인 약 12조원을 차지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느끼는 게임 콘텐츠의 자유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김성회씨가 국회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6월21일 이후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월평균 17.3종의 성인용 게임이 차단됐다. 샌드박스형 게임 로블록스에선 최근 2년간 어린이용 게임 500여종이 차단됐다.
 
이러한 게임이 대한민국에서 차단당한 이유는 김성회씨가 헌법소원으로 제기한 게임법 제32조2항3호가 근거되어왔다.
 
‘누구든지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반입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한 해당 조항은 사실 이상할 것 없는 조항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모방범죄를 부추기고 사회를 문란하게 만드는 것을 막는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상적인 조항은 수많은 게이머를 뿔나게 만들며, 유례없이 2만여명의 청구인을 모아 대한민국 헌법소원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수많은 게이머들은 이 ‘지나치게’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는 것에 공감했을 것이다. 폭력이나 선정성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벼운 스킨십도 누군가에게는 과하다 느껴질 수 있고 영화에 빈번하게 나오는 폭력 묘사 정도야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주관적인 부분은 더욱 세심한 기준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 등급분류세부기준을 살펴보면 ‘혐오감과 공포감을 유발하는 요소가 과도하게 표현된 경우’,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음향이 들어 있으나 지나치게 과도하지 않는 경우’ 등 객관적이지 못한 표현들로 잔뜩 점철돼있다.
 
“사람인 이상 주관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논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배심원제도처럼 일반인들 중 심사위원을 뽑아 결정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작위로 게임에 관심 있는 시민에게 신청을 받아 게임물관리위원회와 함께 등급을 분류하는 것이다.
 
실제로 옆나라인 일본의 컴퓨터 오락 등급 기구 ‘CERO’의 심사자는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로 구성됐으며, 심사 전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세세한 방침으로 게이머와 게임사 모두 납득할만한 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이 거의 나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오락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 ‘ESRB’의 경우 2019년까지 항고 절차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대한민국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꾸준히 감정적인 검열 논란에 휩싸이는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주관적인 개인감정에 치우쳐 심사했다는 예시로 ‘뉴 단간론파 V3’를 사례를 자주 언급한다.

해당 게임은 폐쇄된 학교에서 살인게임이 벌어지고 이를 추리한다는 ‘단간론파’ 시리즈의 3번째 작품으로, 대부분 나라에서 16세 정도의 등급을 부여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편과 2편이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을 받으며, 성인의 경우 구매와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뉴 단간론파 V3’에 대해 등급 부여 거부 판정을 내렸고, 결국 한국 스팀에서는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없게 되었다.
 
단간론파 1편과 2편 모두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 등 전 세계적으로 팬 층이 두터운 게임 시리즈였던 만큼,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의 후속작을 구매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물론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은행을 털고 살인의 자유도가 높은 ‘GTA5’나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로 유명한 ‘포스탈2’ 같은 게임들이 멀쩡히 서비스되고 있으면서, 유교적으로 엄격한 이슬람 국가에서도 플레이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풍의 ‘추리게임’에 반인륜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분류기준이 객관적이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등급을 부여하는 심의는 국민, 특히 청소년이나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찌 보면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정말 국가를 위한 정부 기관이고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법적 강제성을 가지는 기관이라면, 주관적인 검열은 더더욱 조심해야 될 부분이다.
 
주관적인 위원들의 감정변화에 따라 게임의 등급이 결정된다면 그건 ‘심의’라는 칼자루를 쥔 채 눈을 가리고 게임에게 휘두르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에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이런 기준 없는 엄격함은 재고되어야 하며, 진정한 콘텐츠에 자유를 바란다면 하루빨리 객관적인 기준을 내새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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